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를 하루에 품다.
설악산을 자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속초에도 자주 들르게 되었다. 그동안은 주로 힘겨운 등반코스를 전투하듯 완주하고, 속초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한 뒤 서둘러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아내의 걸음에 맞춰 비선대까지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고, 동해안의 비치로드와 호수 둘레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정으로 속초를 다시 찾았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이어지는 울창한 숲길은 천천히 걸을수록 진가를 드러낸다. 목적지에 닿기까지의 숲 향기,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가 고스란히 귀에 들어왔다. 병풍처럼 펼쳐진 비선대 암벽과 천불동 계곡 초입의 풍경은 언제 봐도 압도적이다. 이 정도만 보아도 설악산 비경의 절반은 감상한 셈이다.
둘째 날은 아야진 해변에서 송지호까지, 약 15km 구간의 해변길과 호수길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동해안 자전거 종주를 두 번이나 했지만, 그때는 속도에 집중하느라 주변 풍경을 즐기지 못했다. 이번엔 미니벨로를 타고 천천히 달리며 바다 내음과 바람을 마음껏 만끽했다. 걸어서 다니기엔 멀고, 자동차로는 느낄 수 없는 미묘한 거리감과 감성이 미니벨로에 딱 맞아떨어졌다.
셋째 날은 처음 가보는 영랑호 둘레길을 돌았다. 약 8km의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고, 호수를 따라 여유롭게 달리다 보면 멀리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공룡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호수 위에 비친 산의 실루엣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곳에 집을 한 채 얻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는 바우지움 조각미술관에 들렀다. 건축가가 조각가 아내를 둔 치과의사의 의뢰를 받아 설계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외관도, 내부 공간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술관이 많은 이들의 발걸음으로 지속가능하게 운영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몇 년 전 속초는 세컨드하우스 열풍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공실이 많다고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직접 경험해 보니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산과 바다, 호수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에서도 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맑은 공기와 쾌적한 자연환경이 큰 장점이다.
비록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자주 이곳을 찾으며 자연을 더 가까이, 여유롭게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여행은 속도를 늦춘 덕분에 자연의 결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느림’의 미학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