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함께 있지만,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며

by 장기혁


은퇴 후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지금의 집에는 남편인 내가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여러 곳 있다. 2층의 공부방, 1층의 사랑방, 그리고 외부의 중정과 차고까지. 또한 거실에는 TV를 두지 않고, 각자의 아이패드를 이용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하루 일과 중 아침에 함께 커피를 마시는 시간, 식사 시간, 저녁 산책 시간을 제외하면 각자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기본이다.


몇 달 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 일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각자 독립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점점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아내는 이웃들을 자유롭게 초대하지 못했고,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스피커로 틀 수 없었다. 집 안에서도 서로에게 소음이 되지 않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지내야 했으며, 아내는 하루 세끼 식사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아내는 수십 년 동안 남편이 출근한 후에만 누릴 수 있었던 평일 낮 시간의 자유를 내가 집에 머물면서 갑자기 빼앗긴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타협안이 있다. 아내가 수영을 다녀온 후 함께 아점을 먹고, 나는 도서관이나 외부로 나가 저녁 무렵에 돌아오거나 2층 공부방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인생 후반전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보내는 기본 조건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고 있다.


가족 부양의 책임과 노후 자금 마련의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건강과 더불어 배우자와의 관계이다. 그동안의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이제는 배우자의 입장에서 인생의 후반기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결국 평생 내 곁을 지켜 줄 사람은 아내이기에, 더 많이 존중하고 배려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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