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

학벌로 포장된 계급사회, 그 허상과 실상

by 장기혁



오래전 미국의 한인사회에서 머물렀을 때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누군가를 지칭할 때 반드시 “OO대 나온 아무개”라고 출신 대학을 이름 앞에 붙이던 문화였다. 미국이 기회와 평등의 상징이라지만, 한국인 사회 안에서는 여전히 학벌이 계급을 나누는 기준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학벌 중심의 문화가 한국 사회를 넘어 해외 한인 사회에도 고스란히 복제된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는 학벌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가져온 부작용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우리는 학벌을 기반으로 한 천박한 계급사회를 직면하고 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초중고 12년을 오직 입시에 올인하다 보니, 아이들은 민주시민으로서 성숙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시험만 잘 보면 인성이 부족하거나 이기적이어도 칭찬을 받고, 그들은 명문대에 진학한 뒤 좋은 직장에 들어가 고속 승진하며 사회의 상층부로 진입한다. 이후 자녀에게도 비슷한 경로를 제공하면서 기득권은 세습되고 계급은 고착화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는 점이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평등이나 공공성은 외면한 채, 가난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를 만든다. 오늘날 드러나는 일부 국회의원, 판사, 검사, 고위공무원들의 오만한 행태는 그 폐해의 민낯이다. 이 엘리트 카르텔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더 민주적이고 복지지향적인 사회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었다.


만약 그들이 어릴 때부터 공동체와 공익에 대한 가치관을 갖고 자라났다면, 한국처럼 열심히 일하고 희생해 온 국민들은 북유럽 못지않은 복지국가의 삶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공공 자원이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거나 낭비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겉으로는 학벌 중심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직업에 대한 차별에 있다. 노동이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학벌과 직종은 계급을 만드는 기준이 된다. 공정한 사회에서는 성실하게 일하면 누구나 의식주 걱정 없이 가족을 부양하며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굳이 특정 직업이나 명문대에만 몰릴 이유가 없다.


한국전쟁으로 무너졌던 신분과 계급이 지난 70여 년 동안 학벌을 기반으로 부활했다. 이 학벌 계급 사회는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이제 많은 이들이 이 구조의 폐해를 목격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사회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