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화예술

러시아 국가

볼쇼이 극장에서 울려 퍼진 기억 속의 선율

by 장기혁



이십여 년 전 모스크바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러시아 민요를 즐겨 들었고 러시아 문학, 음악, 제정 러시아의 귀족 문화와 사회주의 시절의 평등을 표방한 낭만적인 분위기 덕분에 왠지 모를 친밀감이 들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업무를 마친 뒤 현지 문화를 적극적으로 경험하고자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중 하나가 볼쇼이 극장에서 오페라나 발레 공연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주중 하루를 택해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관람하러 갔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볼쇼이 극장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웅장한 건축물로, 실내에 들어서면 반드시 외투를 맡겨야 했다. 특히 러시아는 실내에서는 외투를 벗는 문화가 철저한 편이다. 외투 보관소와 입구 통제를 할머니들이 맡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앉은자리는 1층 앞줄의 S석이었고, 당시 티켓 가격은 지금 기준으로 약 4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지인은 1/10 가격에 관람할 수 있다고 들었다. 좌석은 백 년이 넘은 개별 나무의자였고, 운치가 정말 대단했다. 공연 자체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공연 중간 휴식 시간에는 회랑에 있는 라운지에서 사람들이 샴페인이나 와인을 즐기며 시가를 나누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대부분 남자들은 정장이나 연미복, 여자들은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있어 분위기를 더 고조시켰다. 발레 공연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문화 체험이었다.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침 이웃 국가의 황태자가 공연을 관람하러 와서 오케스트라가 양국 국가를 연주한 순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들은 러시아 국가의 웅장함이 가슴 깊이 울려왔다.


귀국 후, 러시아 국가와 러시아 민요, 가요 등이 수록된 ‘레드 아미 콰이어(Red Army Choir)’의 CD를 구매해 여러 번 반복해서 감상했다. 이 국가는 원래 소련 시절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곡이었으나, 소련 붕괴 후 한때 제정 러시아의 국가로 교체되었고, 이후 국민들의 요청으로 다시 현재의 국가로 돌아왔다고 한다. 듣다보면 사회주의에 대한 자부심이 음악 속에 묻어 나온다. 현실은 고단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은 높았다는 것이 음악을 통해 전해지는 듯하다. 영화 붉은 10월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종종 들리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반가운 감정이 든다.


오늘은 오랜만에 러시아 국가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