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태도

압구정동

천민자본주의의 심장부를 가다

by 장기혁



며칠 전, 강남에 일이 있어 나간 김에 신사동, 압구정동, 그리고 삼성동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중고등학교 시절 자주 다녔던 동네였음에도 요즘은 몇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곳이라 그런지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릴 때 살던 동네를 가보면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고향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신사동과 압구정동은 재개발 전이라 예전 모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신사동은 가로수길을 중심으로 주택가에서 상업지구로 변했고, 압구정동은 대규모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곧 사라질 예정이다.


미팅 사이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옛 동네를 걸어보았다. 한때 잘 나가던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임대 문의’ 간판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황량한 쇼윈도들이 많아 상권이 침체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건물주들은 상가를 비워놓는 한이 있어도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경리단길에 이어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적인 패턴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경리단길의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돈의 생리가 애초에 상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압구정동 쪽으로 걸어가며 동네를 둘러보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예전부터 있던 중고 명품 옷과 가방을 대여하거나 판매하는 가게가 더 늘었고, 성형외과가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외국인 의료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허름한 이발소의 남성 커트 요금이 이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체적으로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다. 명품 옷과 가방을 든, 부티 나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고, 성형외과 광고에서 보던 전형적인 얼굴을 가진 여성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외제차도 많고, 고급 백화점과 명품숍,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동네를 돌아다니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의 생활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사는 것 같아서 그런가 보다. 한편으로는 남을 의식하며 비교하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생활양식이 그 동네 전체에 스며든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삶은 피곤하고, 영양가 없는 삶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에게 압구정동은 먼 나라의 어느 지역처럼 남게 될 것 같다. 그들의 생활양식이 다른 지역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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