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낯, 드러난 엘리트의 민낯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소위 사회 엘리트들의 비도덕적이고 무능력하며 무책임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에게 국가 운영을 맡겨놓고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최근 국가 위상이 높아지면서 가졌던 자부심이 하루아침에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다행히도 전우용, 김태형, 김누리, 유시민 같은 지식인들이 이번 사태의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어 위로가 되었다. 그들은 인종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무한 경쟁이 사회를 왜곡시켰으며,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구조가 형성된 원인을 잘못된 교육에서 찾고 있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해왔기에 깊은 연대감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태어난 배경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의식주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설령 실업 상태가 되더라도 국가가 공공복지를 통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의 모델로 나는 북유럽과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를 떠올린다.
과도한 경쟁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연대 의식을 약화시켜 기득권층을 더욱 공고히 한다. 직업 간 임금 격차가 지금처럼 크지 않다면, 사람들은 특정 직업에만 몰리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며 더 큰 만족과 행복을 느낄 것이다. 또한,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라면 무리한 입시 경쟁도 줄어들 것이다.
입시 경쟁이 완화되면 명문고에 진학하기 위해 강남 등 특정 지역으로 이사할 필요도 없고, 교육비와 노후자금을 희생할 필요도 없어진다. 부모와 자식이 불필요한 경쟁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면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몇 년에 한 번 치러지는 선거에서 투표만 하고 모든 것을 정치인들에게 맡겨두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이제부터는 민주 시민으로서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나와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이를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