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회

K-의료

빠름의 성공 뒤에 숨은 노동과 안전의 비용

by 장기혁



목감기가 심해져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대기 인원이 20명이나 있었다. 그럼에도 한 시간 안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료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서는 예약이 기본이고, 환자를 보통 30분 단위로 진찰해 며칠을 기다려야 하며 진찰비만 10만 원 이상을 지불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놀라운 일이다. 예약 없이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 더구나 인구 대비 의사 수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나라에서 말이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이유는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와 더불어 의사들의 높은 생산성과 헌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의료 시스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조선과 방산 산업, 그리고 전통적으로 강점을 지녀온 건설·자동차·반도체 산업에서도 품질은 물론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인들은 근면성과 ‘빨리빨리’ 문화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생존 전략으로 삼아 왔다. 그 DNA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효율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그 부작용도 분명해지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과도한 근무 시간은 의료 사고로 이어지고, 간호사 간의 갑질이나 극단적 선택이라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 사회 전반에서도 여가와 휴식의 부족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인간관계의 문제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안전율 최소화’로 현장에서 버퍼가 사라지면서 노동자들이 과로와 사고로 생명을 잃고 있다. 24시간 맞교대 근무, 2인 1조 작업 미준수, 새벽 배송, 하청의 재하청 구조에서 발생하는 인명 사고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건설 현장 붕괴 사고나 쿠팡의 새벽 배송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 사고는 효율 극대화가 낳은 폐해를 잘 드러낸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 없이 관성에 따라 살아온 우리 자신을 이제는 돌아볼 때다. 국가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었지만, 개인은 그 성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 혜택을 사회 전체가 나누어 가질 때 비로소 노동 환경의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더 공격적인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 토지 공개념을 보다 강하게 도입해 지대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하고, 기업과 고소득자에게 합당한 수준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나와 내 가족만 잘 산다고 해서 행복할 수는 없다.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철조망을 치고 살아가야 하며, 언제 내 가족이 사회의 균열 속에서 폭력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게 된다. 나와 이웃이 함께 잘 살아야 나의 행복도 지켜질 수 있다. 공공성과 분배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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