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우리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계엄령을 통한 내란 시도 이후, 겨우 지난주에 대통령이 파면되었고, 이제 대선을 50여 일 앞둔 지금까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헌법을 명백히 위반한 대통령의 파면이 헌재에서 판결을 지연시키다 국민 저항이 거세진 후에야 간신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내란 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란 공범들과 이를 비호하는 기득권 세력은 지금도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최근의 상황은, 정권이 교체되면 망하게 될 반민주적 기득권 세력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반공을 국시로 삼은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은 점점 더 견고한 ‘성’을 쌓아왔다. 대표적인 것이 검찰, 군부, 기획재정부, 법원이다. 그들은 관료 집단과 언론의 ‘기술적 협조’를 통해 비리를 감추고 국민을 현혹하는 데 성공해 왔다. 하지만 SNS가 일상이 된 지금, 더 이상 가식과 거짓은 숨길 수 없다. 시민들은 속지 않기 위해 각성했고, 그만큼 더 피로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일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 공공을 위해 기여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기득권은 여전히 ‘공공’보다는 ‘사익’을 좇는다. 그들의 목적은 개인과 가족, 혹은 가문의 이익 보호다. 최근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나라가 어떻게 되든 자신과 가족의 부와 지위를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반공익성과 비열함이 시민들의 개혁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공무원 제도도 돌아봐야 한다. 단지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본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공익과 정의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사명감 있는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 그래야 공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인재들이 관직에 오르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제도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의사 선발에도 같은 철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처럼 무한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게 용서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제는 협력과 타협,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는 교육으로 초중고 시스템이 재편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개혁은 제도와 사람을 동시에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