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MBTI

나를 알아가는 도구

by 장기혁



오래전, 사우디 건설 현장에 근무할 때였다. 본사에서 파견된 상담사가 전 직원의 정신 건강 상태를 점검한 적이 있었다. 그 일환으로 처음 받은 것이 바로 MBTI 검사였다. 결과는 I로 시작하는 유형이었고, 분석에 따르면 나는 ISFJ에 가까운 성향을 보인다고 했다. 그때 나는 MBTI라는 개념도 생소했지만, 결과를 읽어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와 놀랍도록 잘 맞아떨어지는 점들이 있어 신기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이후로 몇 년이 흐르고, MBTI는 어느덧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요즘은 입사지원서에 MBTI를 기재하라는 항목이 있을 정도다. 나도 최근 몇 번 온라인 MBTI 검사를 다시 받아봤는데, 여전히 ISFJ라는 결과가 나왔다. 설명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나조차 몰랐던 내 성격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꽤 많은 설명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나는 확실히 ‘I’ 형이다. 사람들 사이에 오래 머물면 피로가 몰려오고,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야 비로소 에너지가 회복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외향적 남성’**을 이상형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말 없고, 조용하고, 온순하며 성실한 ISFJ형 남자는 남초문화 속에서 종종 존재감이 옅어지고, 어색한 취급을 받는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와,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내게도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최근 들어 사회 전반적으로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조용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문제 있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나 같은 사람도 ‘정상’으로 존중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MBTI라는 도구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너그러이 바라보게 되었고, 세상도 조금은 그걸 받아줄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