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삶의 조건
한국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압축 성장의 시기를 거치며 오로지 ‘일’에만 몰두해 왔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나 여가를 즐길 여유는 없었고, 휴식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사회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단기간 고도성장의 후유증은 이미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산성 저하, 공동체 의식의 붕괴, 가정 내 갈등, 건강 문제 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는 이제야 삶의 방식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했다. 서구의 선진국 사람들은 충분한 휴식과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 동시에 높은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 수준의 근무시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모순된 현실을 안고 있다.
나에게 워라밸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정시 출퇴근, 보장된 점심시간, 주말의 온전한 휴식, 지정된 연차 휴가의 자유로운 사용이다. 이 네 가지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근로자의 기본권’이라 생각한다. 대기업을 떠나며 이 기본적인 것들을 되찾고자 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오히려 이 네 가지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고, 건강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보상의 수준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무환경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미래를 위해 자발적으로 이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대열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금의 나는 그런 삶의 방식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삶을 굳이 고집할 이유는 없다.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는 반드시 이 기본권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이제는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