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지킨다는 것의 무게

존엄성과 책임 사이에서 내가 배운 것들

by 장기혁



예전에 상사에게 들은 말이 있다. “자신의 존엄성(Dignity)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처음엔 단순히 격에 맞는 옷차림, 사무실, 차량 등을 스스로 챙기라는 의미로 들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속에 담긴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건 그 자리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일하고, 주어진 책임과 권한을 스스로 균형 있게 다루는 태도라는 것이다. 권한을 쉽게 넘기거나, 반대로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피해야 한다는 조언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귀찮다는 이유로 미뤘던 때가 있었다. 책임은 지면서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권한을 위임해 놓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공백이 생긴 적도 있다. 직원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지나치게 관대하게 굴었던 순간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을 스포일한 셈이었다. 일이 잘 굴러간 건 나의 리더십 때문이라기보다는 운 좋게 좋은 동료나 부하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내 성향이 바뀔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일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의도치 않게 조직에 손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나는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성격이 아니기에, 그 뒷감당은 결국 내가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를 맡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는 연봉이 조금 적더라도 외형적으로 ‘좋아 보이는 자리’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스스로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생각이다. 조직이나 개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마음 편히,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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