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월의 마지막 푸르른 날에
라일락 아카시아 꽃내음이 걷는 걸음마다 코끝을 스치며 향기롭게 풍겨왔다.
교실 창문 너머로 팝콘을 튀겨 놓은 듯 주렁주렁 달려있는 하얀 꽃들이 푸른 잎들
사이사이로 유난히 아름답다
짙푸른 초록 잔디 위에 오월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꽃들이 형형색색 자태를 뽐내며
따사로운 햇살 아래 싱그럽고 탐스럽게 가득 피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향기는 매혹스러우리 만큼 짙게 풍겨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희경은 이따금 솔솔 부는 바람결 따라 교실 창으로 그 향기가 들어올 때면 그 향기애
취해 지그시 눈을 감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교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깥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야호~~~!"
드디어 푸르른 오월의 마지막 축제의 날이다.
개교기념일에 하는 축제라 더욱 설레고 신이 났다.
여기저기서 축제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전자올겐에서 연주하는 가스펠송이 울려 퍼지면서 서서히 축제의 한마당이 시작되었다.
가요를 부르는 학생들,
팝송을 부르는 학생들,
노래와 함께 허슬을 추는 학생들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축제를 즐겼다.
몸을 흐느적거리며 허슬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여기저기서 깔깔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희경은 이렇게 마음이 요동을 치며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갔다.
학교 선배이자 유명 여배우, 그 남편이자 유명 가수가 축하 노래를 부를 땐 정말로 멋있어 보였다.
푸른 잔디 위에서 기타의 선율과 함께 감미롭게 부르는 노래는 마치 한 쌍의 원앙새가 노래하듯
황홀 그 자체였다.
그 순간엔 모두가 무엇에 홀린 듯 조용히 듣기도 하고 열광하며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
학생들의 동경 대상이 될 정도로 충분히 멋진 공연이었고 무대였다.
그 열기와 여운은 날이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날이 어둑어둑 해지자 축제의 하이라이트 촛불 행진이 시작되었다.
노천극장 스탠드에서 촛불 하나씩 손에 들고 등나무 길을 따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나무 숲길을 지나 교정 구석구석 빙 둘러 행진을 하였다.
밤하늘에서 쏟아지듯 반짝이는 별들과 붉게 타오르는 촛불은 까만 밤을 환하게 밝혀주며 수를 놓아갔다.
불꽃은 춤을 추듯 타올랐다.
희경은 촛불을 들고 내내 경건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며 걸어갔다.
'아름다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길게 줄지은 촛불 행진은 고요하고 어두운 밤을 붉은빛으로 파도를 치듯 서서히 물들이고 있었다.
여학생들의 얼굴도 붉은빛을 받아서 발그레해졌다.
오월의 마지막 날 밤이 쏟아지는 별빛과 둥그런 달빛 그림자 속으로 고요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밤이었다.
희경은 체육시간에 쳤던 테니스가 못내 아쉬웠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방과 후에 테니스 코트장으로 갔다.
주위엔 아무도 없고 희경 혼자였다.
희경은 가방을 벤치에 놓아두고 테니스 라켓과 공을 집어 들었다.
벽면을 향해서 서서히 공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튕겨져 나오는 공을 받아치지 못하였다.
엄청 빠른 속도를 생각하지 못하였다.
다시 천천히 공을 치면서 서서히 페이스 조절을 해 나갔다.
몸을 이리저리 구부리고 펴가며 튕겨져 나오는 공을 있는 힘껏 받아쳤다.
그렇게 몇 번이나 쳤을까?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숨도 헐떡였다.
잠시 선 채로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후우~~~
그리고 다시 천천히 벽을 향해 공을 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페이스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리듬을 타며 속도 조절을 해 나가자 마침내 감이 왔다.
희열을 느꼈다.
자신감도 생겼다.
이대로만 하면 되겠다 싶었다.
얼굴에 가득 미소가 피어올랐다.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마음은 시원하였다.
체육복은 어느새 축축해졌다.
숨을 가쁘게 몰아 쉬었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공을 치고는 어느 정도 만족의 기쁨을 맛보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땀을 식혔다.
희경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남아서 그렇게 테니스 치는 연습을 하였다.
그 덕분에 다리에 근력도 생기고 벽치기도 탄력을 받아서 실력이 조금씩 늘어갔다.
그래서 체육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릴 만큼 테니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테니스를 칠 때면 힘이 불끈불끈 솟아오르고 라켓을 휘두르는 힘도 더 세졌다.
공을 강하게 내리칠 때는 묘한 쾌감도 느낄 수 있었다.
스릴 만점이었다.
경기를 할 때 한 점 한 점 스코어가 올라가면 기분이 몹시 상쾌하였다.
그러나 듀스가 되면 심장이 쫄깃쫄깃 해졌다.
희경은 노랗게 물든 커다랗고 오래된 은행나무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혼자만의 여유를 한껏 누렸다.
이따금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노래를 불렀다.
발 밑에는 노란 융단을 깔아놓은 듯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푹신거렸다.
예쁘게 물든 샛노란 은행잎 몇 개를 주워 책갈피 속에 살며시 끼워 넣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내내 소녀의 감성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환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따사롭게 비추는 햇살이 맑고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동화 속 그림 같았다.
희경은
'떡갈나무 숲 속에~~ '가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배웠던 가곡을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가슴에 짜릿한 전율이 전해왔다.
살랑살랑 이는 바람에 은행나무 가지에 달려있던 노란 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흩뿌려져 내렸다.
희경의 눈, 가슴과 뇌리에도 노란빛으로 차츰 물들어 가고 있었다.
한편 오빠 영호는 그동안 고민해 왔던 이사장님 손녀딸과의 만남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만나는 내내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었다.
자신과의 인연은 아닌 듯하였다.
정들기 전에 헤어지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지방 대학교에 합격을 하였다.
그러나 지방에서 자취하면서 대학을 다닐 만큼 집안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결심을 했다.
무얼 할까 고민 끝에 어차피 군대 갈 거면 하루라도 빨리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막상 군대를 가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순간 눈에 가득 눈물이 고였다.
시야가 온통 뿌옇게 되더니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이내 쏟아져 내렸다.
어렵게 어렵게 공부를 해왔는데 여기서 포기를 해야 함에 울컥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가슴이 저려왔다.
영호는 굳은 표정으로 군입대 자원서를 제출했다.
최대한 빨리 갈 수 있게 해 달라고도 하였다.
그로부터 얼미 후 정말 빨리 입영통지서가 날아왔고 입영 날짜도 정말 빨랐다.
영호는 자신의 말대로 바라던 대로 되었음에도 막상 입영통지서를 받고 보니 눈물이 났다.
눈물이 와락 쏟아지는 바람에 그동안 애써왔던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얼굴로 흘러내렸다.
영호는 입영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하고 초조해졌다.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주변 정리를 좀 하고 가야 하는데 촉박했다.
그래서 몇 군데만 인사를 드렸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밤에 잠을 설치는 때가 많았다.
이발소에 갔다.
군입대하려면 머리를 깎아야 했다.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발기로 밀자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
영호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머리를 다 밀 때까지 보고 있었다.
까까중머리가 되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굳게 맹세하였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