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 (제30 화)

(소설) 막 피어오른 꽃처럼

by 황윤주

제30 화


네온사인 불빛이 현란하게 반짝이는 여의도 밤거리.

직원들은 모처럼 일찍 업무를 마치고 호텔나이트를 가려고 서둘러 나왔다.

직원 송별회와 회식을 겸해서다.

호텔 안에 들어서자 으리으리하였다.

천장에 높이 달려있는 샹들리에가 맑고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바닥은 미끄럼을 타도 될 만큼 깨끗하고 광이 났다.

희경은 그 분위기에 잔뜩 주눅이 들었다.

난생처음 와 보는 호텔인 데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 불빛이 번쩍이자 많이 놀랐다.

때마침 펑키타운(Funkytown) 리듬에 맞춰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 지 귀가 먹먹하였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도 들리지 않을 만큼 음악이 빵빵 울렸다.

희경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몹시 당황스러웠다.

음악은 계속해서 디스코풍과 블루스 곡이 번갈아 흘러나왔다.

모두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웨이터가 맥주 몇 병과 음료수 몇 병을 가지고 왔다.

모두 맥주와 음료수 한 잔씩을 따른 후 건배를 했다.

그런 후 스테이지로 나가서 동그랗게 서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고 몇몇은 블루스를 춘다.

희경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문화는 처음이기도 하지만 별로 좋아할 만한 취향은 아니었다.

그저 생소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예의상 딱 한 번 스테이지로 나갔을 뿐 더 이상 춤추러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이자 결산을 하는 날이라 모두 업무를 마감하고 수기로 이자 계산을 하기 바빴다.

희경은 선입선출법에 대해 처음 알았다.

일일이 수기로 계산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뿌듯하였다.

보람도 느꼈다.

직원 모두가 매달려 결산을 해야 했지만 고객들에게 이자를 넣어 주는 것이어서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하였다.

덕분에 직원들 단합도 잘되었다.

희경은 업무 전산화를 위한 on-line 교육을 받고 왔다.

단말기 오퍼레이터로 담당 업무가 바뀌었다.

처음 전산화가 실시되는 거라 속도도 느리고 자주 장애가 발생하였다.

희경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얼굴이 붉어져 화끈 달아올랐다.

처리해야 할 통장은 쌓여가는데 자꾸 장애가 발생하다 보니 창구에 기다리는 고객들로 북적거렸다.

실무 교본을 봐 가면서 업무를 하느라 가뜩이나 진땀이 나는데 차장님께서 계속 왔다 갔다

하시면서 주시를 하여 더 초조하였다.

통장을 쌓여가고 컨베이어벨트는 계속 돌아가는데 처리 속도가 느려 발을 동동거렸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입술도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통장에 수기로 기입해 줄 수도 없고 난감 그 자체였다.

머리가 멍 해졌다.

밀린 걸 다 처리하고 나니 어깨가 축 늘어졌다.

출납 업무를 담당하는 주임님이 희경에게 관심을 보였다.

가끔 툭툭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을 건네기도 하고 "집에 먼저 가서 된장찌개를 해놓고 기다려"

"음악회에 같이 가자"하기도 하였다.

희경은 농담으로 여기고 그냥 무시하였다.

음악회는 여직원들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하자 여직원들이 같이 가면 안 가겠다고 했다.

희경에게 눈치가 없다고도 하였다.

주임님은 32살 노총각이었다.

희경과는 열한 살이나 차이가 났었다.

작은 키에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짧은 머리에다 뚱뚱하였다.

희경이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남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이성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희경은 난처하였다.

그 무렵 고객 중 아주머니 한 분과 인근 군부대 선임하사 그리고 지점장님께서 희경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맏며느리감이라며 중매를 서겠다고 하셨다.

희경은 정중히 사양을 하였다.

선임하사는 꼭 할 얘기가 있다며 업무가 끝나면 잠시 나와달라고 하였다.

희경은 업무 관련한 일 인가 싶어서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런데 선임하사는 당신 아들이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며 한 번 만나보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하지만 희경은 그 또한 정중히 사양하였다.

지점장님께서도 며느리 삼고 싶은데 아들이 한 살 연하라고 아쉽다고 하셨다.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희경은 주변의 관심과 다르게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나 사귀어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무렵 희경은 막 피어오른 꽃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큼 참한 숙녀로 변해있었다.

손님들을 환한 미소로 활짝 웃으며 응대하였던 것이 예쁘게 보였던 것이었다.

희경은 일주일에 한 번 꽃꽂이를 배웠다.

같은 은행을 다니다 퇴직한 언니로부터 여직원 서너 명이 함께 배웠다.

장소는 구내식당이었다.

꽃을 수반에 한 송이 한 송이 꽂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아름다운 선을 그리 듯 꽂다 보면 어느새 작품 하나가 되었다.

꽃꽂이를 배우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콧노래를 부를 만큼 기쁨이 커져갔다.

다 배우고 난 꽃은 집으로 가져가 거실에 꽂아두었다.

희경은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여러 가지 꽃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이 더 아름답고 소중하였다.

향기로 가득한 날들이 감사했다.

희경은 이제는 실무 교본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오포레이터로서 단말기 조작을 제법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장애만 발생하지 않으면 업무 처리가 지연되는 일이 없었다.

점점 담당 업무에 대한 노하우도 생기고 여유도 생겼다.

하루하루 일에 대한 보람도 느끼고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직원들과 소통도 잘하고 잘 어울렸다.

희경 만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였다.

당직 근무 중에 친구 미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당직을 마치면 영등포 시장 근처 다방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친구 정미와 같이 있으니 천천히 와도 된다고 하였다.

당직을 마치고 지점에서 가까운 미용실에 들렀다.

마침 미용실이 한가하여 빨리 머리를 자를 수 있었다.

특별히 약속 시간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약속 장소로 향했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여러 마을을 거쳐 달려갔다.

약속 장소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서 순조롭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약속 장소가 다가올수록 거리는 더욱 번잡했다.

도로에 차들도 많았다.

거리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경적 소리도 요란했다.

끼~~~ 익~~~

버스가 정류장에서 멈춰 섰다.

버스에서 내린 다음 영등포 지하도로 내려갔다.

그런데 막 내려간 곳에서 미희와 정미를 만났다.

기다리다 너무 안 와서 다른 곳으로 이동 중이라 했다.

일행도 있는 듯했다.

미팅을 했다고 한다.

미팅을 한다고 하면 안 나올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다고 하였다.

파트너도 정했다고 했다.

희경의 파트너는 원래 희철이었으나 희경이 나오지 않아서 정미의 파트너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희경의 파트너는 자연스레 원희 씨가 되었다.

다들 동갑나기라 한다.

남자에 대해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친구들이 하는 대로 그냥 지켜보았다.

시내로 나가려고 버스를 타러 가는 중이라 했다.

다들 싱글벙글하였다.

버스를 타고 빈자리에 앉았다.

작은 키에 마른 체형, 유독 말이 없고 머리가 긴 원희 씨는 화가 난 사람처럼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있었다.

일행이 탄 버스는 한강 다리를 지나 점점 도심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