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 (제33 화)

(소설) 이별, 딱 한 번만...

by 황윤주

제33 화


원희는 메모지에 신청곡을 정성스럽게 적어 DJ에게 건넸다.

희경을 위한 노래와 자신이 즐겨 듣는 노래 몇 곡을 적은 것이었다.

DJ는 짧은 멘트와 함께 신청곡을 틀기 시작하였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희경은 말없이 들었다.

원희는 말 대신에 짧은 시 한 편을 적어 희경에게 건넸다.

원희의 새로운 면모에 희경은 마음이 조금씩 끌려갔다.

비록 체구는 왜소했지만 자상한 면이 있어 점점 매력으로 다가와 좋아졌다.

약속 장소는 둘만 만날 때는 늘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희경의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항상 원희가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매일 만나다 보니 점점 정이 들면서 설레고 좋았다.

자연스럽게 웃음도 많아졌다.


무덥던 여름이 가고 시원한 가을이 왔다.

높고 푸른 가을만큼이나 원희와 희경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이고 사랑도 조금씩 싹이 텄다.

원희는 희경을 장래 배우자감으로 생각을 굳혔다.

그래서 부모님께도 자신 있게 희경과 만나고 있다고 하였다.

원희 어머님은 궁합을 한 번 봐야겠다고 하셨다.

원희는 은근히 기대에 부풀었다.

자려고 누워도 희경의 얼굴을 떠올리고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며칠이 지났다.

원희는 어머니로부터 궁합이 너무 안 좋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의 반대로 찜찜하였다.

한껏 부풀어 설렜던 마음이 탁 가라앉았다.

순간 울컥하였다.

희경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방안 가득 뿌연 담배 연기가 자욱해졌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희경과 원희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원희는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얼굴 표정도 어둡고 굳게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담배만 계속 피워댔다.

희경은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스스로 말을 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원희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궁합을 봤는데 너무 안 좋대."

희경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럼 만나지 말아야겠네. 반대를 하실 거잖아."

"응"

"안 좋다고 하는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을까? 서로 갈등을 빚을 텐데."

희경의 말에 원희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는지 침통한 표정으로 담배만 뻐끔거렸다.

"우리 서로 앞으로 계속 만날 건지 헤어질 건지 생각해 보고 다시 얘기하자."

그 말을 하고 희경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희경은 생각했다.

원희의 표정으로 봐서는 집안 반대가 심한 것 같았다.

헤어져야겠다 마음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거리엔 낙엽이 바람결 따라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발길이 닿을 때마다 바스락거렸다.

희경은 마음이 스산하였다.

그동안 쌓였던 원희에 대한 감정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곱고 아름답게 싹을 틔였던 사랑이 꽃도 피지 못하고 이대로 시들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온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까지 왔다.

누가 볼까 봐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그대로 앉아 이별 편지를 써 내려갔다.

원희에게 솔직하게 말을 해야겠다 싶었다.

구구절절 쓰다 보니 생각보다 편지 내용이 길어졌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라.'하고 끝을 맺었다.

원희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으나 순간 희미해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돼 버렸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리 없이 삼켰다.

희경은 밤새 잠을 설쳤다.

이리저리 뒤척일 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슬픔이 가슴을 울렸다.

원희에 대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몹시 괴로웠다.

그렇지만 결단은 필요했다.

뜬눈으로 날이 밝았다.

힘없이 초췌해진 얼굴로 원희에게 잠깐 만나자는 전화를 걸었다.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올바른 결정인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답은 하나였다.

'여기서 멈춰야 해.'

희경이 다방에 들어갔을 땐 원희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며 오래 앉아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솔직하게 원희의 얼굴을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서로 마음만 아플 게 뻔했다.

희경은 커피를 그대로 놓아둔 채 서둘러 편지를 건넸다.

그리고 바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냉정해야 했다.

그렇지만 가슴이 아려왔다.

꼭 못할 짓 해 놓고 도망 나온 기분이 들었다.

희경의 마음과는 달리 날씨는 너무도 화창하였다.

무작정 걸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걷다 지쳐서 더 이상 걷기 힘들 때까지 그렇게 걸었다.

머릿속을 하얗게 비우기 위해 걸었건만 그럴수록 더 원희의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원희는 희경의 편지를 읽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뿌연 안갯속을 걷는 것만 같았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물밀듯 밀려왔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뿌연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거의 일주일을 술만 마셔댔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원희 어머니는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숨만 나왔다.

속이 탔다.

생각다 못해 원희 친구 대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와서 원희를 설득 좀 해달라고 하였다.

친구 대식은 무슨 일인가 싶어 헐레벌떡 달려왔다.

대식은 자초지종을 듣고 몹시 당황스러웠다.

누구의 편도 들을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우선은 원희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잘못될 것만 같았다.

급한 마음에 희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릉릉~~~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원희 친구 대식인데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원희가 일주일째 아무것도 안 먹고 술만 마셔서... 저러다 잘못될 것 같아요. 사람 하나 살린다 셈 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만나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희경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잘 지낼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요? 알겠어요. 어디로 가면 되죠?"

"예전에 만났던 중화요리 집으로 오시면 됩니다."

"몇 시까지 가면 될까요?"

"오후 1시에 만나죠."

"네, 알겠어요. 거기서 뵙죠."

희경은 마음이 무거웠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뜻밖의 소식에 잠시 놀랐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호흡을 했다.

"후우~~~ 후우~~~"


희경은 중화요릿집 문 앞에 서자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시 멈춰 섰다.

가까스로 진정을 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하지? 얼굴을 어떻게 쳐다보지?'

오만가지 생각이 뒤엉켜 뇌리를 스쳤다.

'일단 들어거자.'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희는 힘없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었다.

친구 대식도 그 옆에 앉아있었다.

희경은 원희를 보자마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선 채 멍하니 있었다.

친구 대식이 앉으라는 말을 할 때까지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기만 할 뿐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