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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없는 메아리

(에세이) 배회

by 황윤주

나의 일탈이었다.

속상한 일이 있어 마음을 좀 풀어볼까 싶어서 무작정 집을 나왔다.

날씨는 맑고 화창한데 막상 나오고 보니 갈 곳이 없었다.


친정에 가려해도 갈 친정이 없고,

형제들한테 가려니 멀리 살고,

친구들을 만나려니 직장에서 일하는 중이고,

이래저래 갈 곳이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평소 여기저기 다니는 성격이 아니어서 더더욱 갈 곳이 없었다.

괜스레 동네 한 바퀴, 시장 한 바퀴 돌고도 딱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 작은 카페 한 곳이 눈에 띄었다.

그 앞에 섰는데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주문을 하려면 키오스크(kiosk)를 할 줄 알아야 하는 데 사용법을 몰랐다.

한참 그 앞에서 서성거리다 용기를 내어보았다.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면서 더듬거리며 마침내 주문에 성공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커피를 마시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혼자 앉아 있기가 쑥스러웠다.

좁은 공간이라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대로 앉아 있기가 민망했다.

망설임 끝에 그냥 문을 열고 거리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시간 좀 끌다 집에 가고 싶었는데......

시간은 참 안 갔다.

그래도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는 싫었다.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전철역 바로 앞 카페를 또 들어갔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생각 같아서는 오래 있고 싶었으나 그곳도 마찬가지로 혼자 앉아 있기에는

너무도 조용하고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람들이 대화를 조용조용하기도 하고 노트북을 하기도 하였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분위기였다.

나이 많은 내가 앉아있기에는 다소 어색한 풍경이었다.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어서 더 어색하고 낯설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단숨에 커피를 마시고 곧바로 일어섰다.


카페를 두 군데나 갔어도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또다시 거리를 배회하였다.

집을 향해 걷다가 제법 큰 유명 카페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로 카페 안은 북적거렸다.

또한 대화 소리로 시끌벅적하였다.

노트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았다.

시간 때우기 참 어려웠다.

제법 오래 앉아 있었음에도 걸려오는 전화도 없고 나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

아이들은 일하느라 바쁘기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 배회하는 것도 몰랐다.

집에 있는 남편조차도 연락이 없었다.


혼자 덩그러니 한참을 앉아있었다.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 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도 갈 곳이 없나?'

'이렇게도 만날 사람이 없나?'싶은 게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간신히 마음을 달랬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내가 없으면,

내가 차려주지 않으면 혼자 챙겨 먹지 않는 남편 걱정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집에 와서 불도 안 켠 채 컴컴한 거실에서 웅크리고 누워 자는 남편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불을 켜고, 밥상을 차리고 남편을 깨우니 그제야 일어났다.

남편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밥 먹는데만 열중하였다.

그 순간

내가 뭘 하고 다닌 건지 씁쓸하였다.

그렇게라도 하면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내 마음을 알아달라 외쳤는데,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나의 외침은 허무하리 만큼 그렇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하나 얻은 건 나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생겼다.

그리고 용기도 생겼다.

예전 같았으면 집에서 혼자 고민하고, 혼자 속상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속을 바글바글 끓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몇 시간 동안 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비록 배회하느라 다리는 좀 아팠지만 나름 괜찮았다.

누군가 함께 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조용히 혼자 보낸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큰 소리로 외치지 않으면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나의 일탈은 끝이 났다.

아무도 모르게 대답 없는 메아리만 허공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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