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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

(소설) 안타까운 마음

by 황윤주

제5 화


학교 가는 길목

옆동네에 화교가 살고 있었다.

그 집은 밭농사를 지었다.

밭이 워낙 넓어서 혼자 힘으로 감당이 안 돼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당을 주고 밭농사를 지었다.

희경어머니도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집 바로 옆에는 아교 공장이 있었다.

아교 공장에서 풍기는 냄새는 엄청 역했다.

공장 바로 옆

화교가 농사짓는 밭 한쪽에 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커다란 분뇨 웅덩이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하여 눈살을 찌푸리고 코를 막고 지나갔다.

때마침 여름이라 냄새는 더 심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악취가 심했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 "욱"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 곳에서 희경어머니는 머리에 달랑 수건 하나 쓰고 일을 했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이었다.

내리쬐는 뙤약볕에서 일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음에도 일을 계속해야만 했다.

일하는 내내 목도 마르고,

줄줄 땀이 흘러 주체를 못 하였다.

수시로 땀을 닦으며 일을 해야 했다.

거기다 더해 진동하는 역한 냄새 때문에 더 힘들어했다.

어찌나 냄새가 심한지 파리가 떼로 날아다니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 주위로 엄청 꼬여 들었다.


희경은 방과 후,

집에 가는 길에 밭에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밭이 워낙 넓은 데다가 농작물들이 많아 어머니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잘 자란 짙은 녹색잎의 토란, 홍고추, 청고추, 호박, 가지 등 갖가지 열매가 가지마다 알록달록 매달려 있었다.

부추와 양배추도 보였다.

초록빛 물결처럼 들깻잎들이 밭 한 자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희경어머니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터라 더 허기지고 기력이 달렸다.

더운 열기가 위에서 내리쬐고 땅에서 올라오고 숨이 턱턱 막혔다.

그 열기가 한눈에 보기에도 이글거렸다.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목구멍이 타는 듯하였다.

그래서 바가지에 물을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살 것 같았다.

한결 나아졌다.

농작물을 수확해서 다듬고 묶는 일을 하루종일 하였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일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희경어머니는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서 툭툭 흙먼지를 털어냈다.

오금이 저리고, 허리가 아팠다.

집에 가려는 희경어머니에게,

주인아주머니가 고생했다고 집에 가져가 먹으라며 가지, 호박, 부추 등 이것저것을 많이 챙겨주셨다.

어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씩하고 나서야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희경은 문밖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오시는지 고개를 쭉 빼고 한참을 서성이며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어머니 얼굴과 모습에서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 수가 있었다.

핼쑥했다.

어린 희경은 잔뜩 지쳐있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대체 생계가 무엇이길래 그런 곳에서 하루종일 참고 견디며 일을 해야 하나?'

가슴이 먹먹했다.

어린 희경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하였다.


아버지와 언니가 오늘따라 늦는다.

언제나 날이 어둑어둑 해져야 집에 온다.

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긴 한숨이다.

몸속의 더운 열기를 그렇게 뱉어냈다.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는 지치고 힘든 몸으로 주섬주섬 저녁 준비를 하신다.

쓱쓱 쌀을 씻는다.

물 흐르는 소리가 희경의 귓가에 들려왔다.

밥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뱃속에서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난다.

점심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그런지 더욱 배가 고팠다.


아버지와 언니가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안 온다.

밖은 어느새 깜깜해졌다.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두 사람이 같이 들어왔다.

집에 오는 중 길 어귀에서 만났다고 한다.

아버지와 언니는 일이 무척 힘들었는지 어깨가 축 늘어져있다.

게다가 걸어오느라 더 힘들었던 모양이다.

직장을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모두 밥상 앞에 동그랗게 빙 둘러앉았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오늘 일하고 얻어온 채소 반찬이 먹음직스러웠다.

배가 고팠는지 다들 허겁지겁 밥 먹느라 아무 말이 없다.

쩝쩝대는 소리와 젓가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이 방안에 울려 퍼진다.

밥을 먹고 난 후,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얘기한다.

희숙은 입을 쉴 사이 없이 말을 이어갔다.

일을 하면서 미싱을 배우는 게 무척 재미있는지 연실 웃고 얘기하느라 그칠 줄 몰랐다.

지금은 실밥 따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옷 개수를 세고 포장하는 일을 하지만,

꼭 미싱사가 되겠다고 한다.


희경아버지는 알루미늄새시로 창문틀을 만드는 일을 하신다고 한다.

도면을 보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도면 그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고 하였다.


희경은 시간표를 보고 책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국어책을 꺼내 큰 소리로 읽었다.

이제는 글을 제법 잘 읽는다.

스스로 뿌듯한지 미소를 한가득 지었다.


희경의 가족들은 서울살이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웃는 일도 많아졌다.

근심이 가득했던 얼굴도 조금씩 밝아졌다.

시간이 꽤 흘렀다.

하루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모두 자리에 누웠다.

하루의 고단함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아버지, 어머니 코 고는 소리가 주거니 받거니 리듬을 타고 고요한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멀리서 찹쌀~~~ 떡~~!

메밀~~~ 묵~~!

외치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희경은 잠이 오질 않았다.

낮에 보았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도대체 생계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것일까?'

희경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 도움이 못 되는 자신이 안타까웠다.

어린 희경의 마음과 뇌리에 근심이 한가득 자리 잡았다.

그래서

밤이 늦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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