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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제9 화)

(소설) 기쁨도 잠시 설움이 밀려왔다

by 황윤주

제9 화


오빠영호가 온 후부터 집안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무슨 일이든 아버지 다음으로 아들인 영호가 우선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이 뚜렷했다.

매사에 장남,

아들 아들 하였다.


희경아버지는 며칠 동안 고심 끝에 동네 딱 하나뿐인 희경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 갔다.

아들영호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상담을 하러 간 것이다.

영호 나이 13살.

상담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오랜 시간 상담 끝에 6학년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희경아버지는 몇 번씩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할까 봐 내심 초조하고 긴장을 하였다.

정말 고마웠다.

얼굴도 한층 밝아졌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희경아버지가 집에 오자마자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다들 아버지 얼굴만 쳐다보았다.

활짝 웃어 보이는 아버지 표정을 보고 나서야 다들 안심을 하였다.

희경이는 오빠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어서 너무나 기뻤다.

서울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어 몹시 설레었다.


희경아버지가 사업을 해보겠다고 직장을 그만둔 지 꽤 되었다.

실직 상태이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매일 침통한 표정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사를 해봐야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돈도 적게 들어가고 바닷가에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제일 잘 아는 생선 장사를 한번 해봐야겠다고

식구들에게 선언을 했다.

희경어머니는 뭐라도 해야 한다며 반색을 했다.

장사를 같이 다닐 수는 없으니 따로 행상을 할 거라 하였다.


며칠이 지났다.

희경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나갔다.

한참 안보이더니 어디서 구해왔는지 허름한 자전거 한 대를 끌고 나타났다.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자전거였다.

아버지는 장사를 잘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희경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의례 집안일을 하였다.

어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해서다.

집안일하는 게 싫지는 않았다.

당연히 하는 걸로 알았다.


집안일을 다하고 나면 동네 아이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오징어가이상 놀이를 하였다.

구슬치기를 하면 늘 따서 주머니가 불룩해져서 집으로 왔다.

딱지치기는 상대방보다 글자수가 많거나 별 개수가 많아야 이기는데 매번 져서 딱지를 잃었다.


오빠영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일어섰다.

그러더니 서서히 노래에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하더니 다리를 마구마구 흔들며 춤을 췄다.

게다리춤을 추는데 어찌나 잘 추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문틈사이로 쳐다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문 앞에 모인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흥을 돋웠다.

영호는 사람들 호응에 더 신이 나서 춤을 췄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렇게 한참을 추었다.


영호는 희경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

희경은 꼼꼼하고 소심한 반면 영호는 꼼꼼하면서 활달하였다.

매사에 의욕이 넘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둘은 서로 잘 맞았다.

희경은 오빠를 잘 따랐다.


이른 새벽인데 인기척이 들린다.

희경 부모님이 집을 나선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하다.

수산물 도매시장을 가기 위해 첫차를 탔다.

오늘부터 생선 장사를 하려고 물건 하러 가는 중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생활고가 심적으로 많이 부담되었다.

딸 희숙에게만 마냥 기댈 수 없었다.

부모로서 못 할 짓이라 생각했다.

희경어머니가 가끔 밭일을 하고 벌어오는 돈으로는 생활이 감당 안 되었다.


새벽시장은 불이 환하게 밝혀져있고 활기가 넘쳤다.

물건을 팔려는 도매상들과 물건을 사려는 소매상들로 몹시 북적거렸다.

한마디로 북새통을 이뤘다.

희경부모님은 난생처음 새벽 도매시장을 왔다.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쭈뼛쭈뼛 기웃거렸다.

가까스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만에 고등어 한 궤짝을 샀다.

장사는 처음이라 겁도 나고 가진 돈도 얼마 없었다.


어두운 하늘에 별이 가득했던 하늘이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집에 오는 동안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희경아버지만 장사하러 가기로 하였다.

희경어머니는 집에 오자마자 밥부터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남편도 장사를 가야 했다.

희경도 어머니와 함께 아침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식구들 밥을 다 푸고 나니 오빠영호 도시락 쌀 밥이 모자랐다.

난감했다.

희경어머니는 자신이 먹을 밥을 싸 주라고 하였다.

그 얘길 듣고 있던 영호가 극구 말렸다.

도시락을 안 싸가도 괜찮다며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희경어머니는 내일은 꼭 싸 주겠다고 하였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마음은 찢어질 듯 아려왔다.

자식 도시락 하나 못 싸주는 못난 부모라는 생각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희경은 아버지가 장사를 잘하고 오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희경은 오늘 점심 굶을 오빠를 걱정했다.

오빠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희경이는 다행히 저학년이라 도시락을 안 싸가도 되었다.

"희경아~~~ 학교 가자."

밖에서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딩~ 동~ 댕~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영호네 반 아이들이 하나 둘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한다.

교실 안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반찬 냄새들로 가득했다.

영호는 침을 꼴깍 삼켰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배가 고팠다.

도시락을 가져온 친구들이 부러웠다.

밥이 먹고 싶었다.

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갔다.

복도를 지나 학교 운동장에 있는 수돗가를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갔다.


수돗물을 틀고 허겁지겁, 벌컥벌컥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배가 불룩해질 때까지 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갑자기 영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애써 참았다.

하지만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영호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혼자 운동장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점심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영호는 학교를 마치고 어디론가 향해서 갔다.

얼굴엔 뭔가 굳은 결심을 한 듯하다.

영호가 간 곳은 동네 신문사였다.

신문 배달을 해 볼 참이었다.

한참 얘기를 한 끝에 다음 날부터 신문 배달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호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가난이 싫었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며 결심을 했다.

가족들에게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조용히 하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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