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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 (제17 화)

(소설) 배움

by 황윤주

제17 화


체육대회 하이라이트 가장행렬이 시작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 형형색색 옷을 입고 분장을 하고 운동장을 빙 둘러 걸어간다.

여학생들의 까르르 넘어갈 듯 웃는 소리가 운동장 가득 메아리친다.

우스꽝스러운 모습부터 우아한 자태까지 모두 볼 수 있는 행렬은 사춘기 여학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며 즐거워하였다.


희경도 한복을 입고 가장행렬 대열에 끼어서 축제를 즐겼다.

처음엔 쑥스러웠으나 차츰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한창 무르익던 체육대회는 가장행렬을 끝으로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조금은 아쉬웠다.

맘껏 웃고 떠들며 보냈던 하루도,

드높게 펼쳐졌던 푸른 하늘도,

서서히 붉은 노을빛 속으로 저물어 갔다.


한껏 들떴던 마음은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한 후에도 계속 여운으로 남았다.

모처럼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희경의 반 친구 애숙이가 결석을 하였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수군거렸다.

담임선생님께서 애숙이가 급성 맹장 수술을 했다고 하셨다.

일주일정도 학교에 안 나올 거라 하셨다.

애숙이는 붙임성도 좋고 명랑하고 쾌활한 아이였다.

늘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희경이를 비롯해 몇몇 단짝 친구들이 방과 후에 병문안을 갔다.

애숙은 많이 아팠는지 입술이 바짝 마르고 터져있었다.

친구의 그런 모습을 보고 모두들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병실에 오래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빨리 나으라는 말을 건네고 서둘러

병실을 나왔다.

희경은 마음속으로 빨리 나아서 건강하라고 기도했다.


중학교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 갖는 실습시간이다.

희경이는 마음이 설레었다.

널찍한 실습실을 처음 본 희경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리대 위에 놓여있는 재료를 보며 호기심 가득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만들어 보는 샌드위치다.

오이를 얇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다음 꽉 짜서 마요네즈에 버무려서 식빵에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다 만들고 시식을 하는데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이라 처음엔 무슨 맛인가 싶었다.

별 맛이 없는 듯하였다.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다시 한번 맛을 보았을 땐 그 맛에 조금 익숙해져서인지 고소한 게 또 먹고 싶어졌다.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점점 샌드위치가 맛있어졌다.

다 먹고 입맛을 다실 정도로 그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희경은 어머니에게 손으로 돌리는 미싱을 배웠다.

실을 바늘에 꿰고,

북실을 감아서 끼워 넣고,

바느질을 한 땀 한 땀 박아갔다.


학교에서 플레어스커트를 만들기 때문에 박음질을 해야 했다.

가정시간에 본을 뜨고, 옷감에 초크로 그리고, 가위로 잘라 시침질을 하였다.


집에 온 희경은 천천히 박음질을 해 나갔다.

처음엔 박을 엄두를 못 냈었는데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익숙해졌다.

비록 속도는 느렸지만 손으로 돌리는 미싱이라 박다가 쉬다가 하면서 스커트를 완성했다.

치수는 희경의 몸에 맞춘 거라 잘 맞았다.

첫 작품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완성된 것을 선생님께 제출하는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점수도 잘 받았다.

희경은 새롭게 하나씩 배워가는 것이 즐거웠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그 후로도 한복을 만들고 버선도 만들었다.

한복치마 주름을 잡을 때는 재미도 있었다.


희경은 동그란 수틀에 천을 끼우고 알록달록한 오색실로 수를 놓았다.

꽃 한 잎 한 잎 수를 놓고, 앞파리 하나하나 수를 놓아가며 기쁨도 커져갔다.


희경어머니는 십자수를 매우 잘하셨다.

희경은 어머니 솜씨를 닮았는지 제법 수를 잘 놓았다.

한 번 배우거나 가르쳐주는 것은 금방 잘 따라 했다.

한마디로 손재주가 있었다.


희경어머니는 막내딸로 태어나 집안일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십자수를 놓으며 살았다고 하셨다.

희경은 천생 여자였던 젊은 시절 어머니를 상상해 떠올려 보기도 하였다.

조용하고 차분한 어머니는 결혼 후에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어려운 생활 탓에 강인함이 필요해서인지 점점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변해가고 있었다.


희경아버지는 나날이 실력이 늘어 완전 기술자가 다 되었다.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서 견적도 내고 도면도 그릴 줄 알게 되었다.

쇠톱으로 새시를 잘라 창문과 창틀을 만들었다.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집안 형편도 많이 좋아졌다.

희경아버지는 어느 정도 형편이 더 나아지면 아랫동네에 집을 사서 이사하리라 마음먹었다.


희경어머니는 며칠째 속이 메스껍고 자꾸 헛구역질을 했다.

음식 냄새 맡는 것도 힘들었다.

'왜 그럴까?'

'어디가 안 좋은가?'생각하다

'혹시 임신 인가?'하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였다.

나이가 많아서 설마 했는데 곰곰이 날짜를 세어보니 임신인 게 확실했다.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희경어머니는 난감하고 난처했다.

손주보다 자식이 더 어릴 걸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족들 보기에도 그렇고 남들 보기에도 창피하게 생겼다.

늦둥이를 갖게 된 것이 딸인 희숙에게도 미안했다.

'이를 어쩌지?' 하며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겨 하루하루 초조하게 지냈다.

그렇다고 귀중하고 소중한 생명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고민은 더욱더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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