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를 어쩌나, 딸아 부탁한다
제21 화
강 언덕 둑길 따라 길게 뻗은 호박 넝쿨에 노란 호박꽃이 여기저기 피었다.
노란 꽃 밑에 동그랗고 작은 호박이 수줍은 듯 달려있다.
어린아이 서너 명이 소꿉놀이하면서 호박을 따려고 손을 뻗는 순간,
호박 넝쿨 사이사이 비집고 뻗어있는 가시풀들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까끌거리며 쓸렸다.
"앗, 따가워"
아이들은 뻗었던 손을 재빨리 잡아 뺐다.
그러고는 가시풀 위로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까만 노르래기 벌레를 보고 화들짝 놀라 저 멀리
달아났다.
희경은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며 배시시 웃었다.
천진스러운 아이들이 마냥 귀여웠다.
그런 아이들을 대신해서 호박과 호박꽃 몇 개를 따서 아이들에게 건넸다.
"얘들아! 이걸로 맛있게 만들어라."
아이들은 수줍고 멋쩍은 얼굴로 받아 들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연거푸 감사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쪼그리고 모여 앉아 흙으로 밥을 짓고 호박과 호박꽃을 잘게 잘라서 반찬을
뚝딱뚝딱 만들었다.
"냠냠 냠냠"
소리를 내가며 먹는 시늉을 낸다.
아이들은 맛있다며 호로록 먹더니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희경은 한참을 넋을 잃고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밀조밀 재미있게 소꿉놀이하는 아이들이 무척 예뻐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희경이 집 앞에 다다르자 아기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응애~~ 응애~~"
"응애~~ 응애~~"
꽤나 큰 소리가 문밖까지 들려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후다닥 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희경어머니가 계속 달래며 젖을 물리는데도 아무 소용없이 계속 울어댔다.
배가 고픈데 젖이 나오지 않아 그렇게 서럽게 우는 것이라 했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희경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진땀을 흘렸다.
그러더니 딸 희숙을 다급하게 불렀다.
"민혁어미야~~ "
"민혁어미야~~ 이리 좀 와 봐라."
희숙은 어머니의 다급한 소리에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하던 일을 멈추고 방으로 들어왔다.
"왜,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젖이 안 나와서 그러니 동생 젖 좀 먹여주라."
애가 타 볼멘소리로 말을 건넸다.
"배가 고파 이렇게 울어대니 어쩌겠냐 부탁한다."
희숙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싶었다.
누나 보고 동생 젖을 먹이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희경어머니는 망설이는 딸을 향해 재차 부탁을 했다.
"동생 좀 살려주라 부탁한다."
희숙은 어린 동생을 쳐다보니 안쓰럽고 짠한 생각이 들었다.
아기 엄마라 그런지 순간 모성애 같은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갓난아기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아기는 젖을 물리자마자 허겁지겁 쭉쭉 빨며 먹기 시작했다.
"켁, 켁"
급하게 먹은 나머지 사레가 들리기도 하였다.
희경어머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막상 노산을 하고 보니 젖이 금방 돌지 않았다.
더군다나 먹는 것까지 부실하다 보니 젖이 더 안 나왔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희경은 할 말을 잃었다.
모두 딱해 보였다.
당장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도, 배가 고파 먹어야 하는 갓난아기 동생도, 비록 갓난 아기지만
동생에게 젖을 먹일 수밖에 없는 언니 처지도 안쓰러웠다.
희숙은 아들민혁에게 먹일 때와는 다르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현실 앞에서
'그래 어쩌겠어 우선 먹이고 봐야지.'
'암, 그래야지'
젖을 먹이면서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고 또 되뇌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는 한참을 먹더니 배가 부른 지 기지개를 켜더니 스르르 눈을 감았다.
희숙은 잠든 아기를 살며시 뉘었다.
희경어머니는 딸 희숙에게 정말로 미안했다.
자신의 노산으로 인해 딸에게까지 못할 일을 시키는 것 같았다.
마음 한편에 무거운 추가 매달려 마음 구석구석을 후벼놓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싶었다.
'뭐든 먹고 빨리 젖을 돌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마음은 그러한데 막상 먹으려고 보니 변변한 게 없었다.
커다란 양은솥에 불려놓은 미역과 쌀뜨물을 한가득 넣고 보글보글 푹 끓였다.
그렇게 끓여놓은 미역국을 배가 꺼질만하면 먹고 또 꺼질만하면 먹었다.
밥도 수북이 고봉밥을 배가 불룩할 정도로 먹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희경은 어머니와 언니를 대신해서 가게를 도맡아 보았다.
핫도그를 만들기 위해서 소시지를 작게 잘라 나무젓가락에 끼웠다.
어느 정도 수북해지자 미리 해 놓은 밀가루 반죽을 돌려가며 돌돌 말아 핫도그 모양을 만들었다.
끓어오르는 튀김통 꽂이에 하나씩 끼워 넣었다.
핫도그는 금방 튀겨졌다.
노릇노릇 먹음직해 보였다.
고소한 냄새에 이끌렸는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너도 나도 핫도그를 달라고 소리쳤다.
희경은 신이 났다.
핫도그는 금세 동이 났다.
희경은 핫도그 맛이 궁금하였다.
그래서 핫도그 하나를 집어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순간, 고소함이 입안 가득 쫙 퍼졌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희경은 최대한 천천히 먹으며 맛을 음미했다.
핫도그를 먹는 내내 행복했다.
다 먹고 나서도 그 맛의 여운이 한참 동안 입안에서 맴돌았다.
희경어머니는 과일이 물러진 것과 상처가 난 것을 모두 골라냈다.
그리고 멀쩡한 부분을 잘라서 가족들에게 주었다.
그런 걸 주어도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불평불만 없이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했다.
희경어머니와 희경은 집에서 가까운 동네 시장에 갔다.
시장을 둘러보다 통닭집에 들어갔다.
노릇하게 잘 튀겨진 통닭을 두 마리 샀다.
희경은 누런 봉투에 담긴 통닭을 들고 오는 내내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꼴깍꼴깍 침을 삼키면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빨리 가서 먹을 생각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희경은 집에 오자마자 커다란 쟁반에 통닭이 든 봉투를 찢어서 펼쳐놓았다.
고소한 냄새를 맡고 모두 우르르 몰려 앉았다.
올망졸망한 동생들과 조카 그리고 어른들까지 모두 열한 식구가 모였다.
한쪽씩 들고 먹으니 통닭은 순식간에 없어졌다.
모두 아쉬워하는 눈치다.
희경은 언제나 닭가슴살만 조금 먹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희경어머니는 식구들 표정을 살피고는 재빨리 부엌으로 가서 희경과 함께 야채 튀김을 만들었다.
아쉬운 대로 튀김이라도 먹게 하려는 것이다.
바구니에 한가득 담긴 고소한 튀김을 보고 모두들 흐뭇한 표정이다.
동생들은 싱글벙글 신이 났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듯 골목에 울려 퍼졌다.
희경어머니는 어느 정도 몸이 추스러지고 회복이 되자 생선 다라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나갔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다니지는 않고 몇 시간만 팔고 들어왔다.
희숙은 어머니가 집에 없는 동안 아기에게 젖을 대신 먹였다.
가게는 희숙과 희경이 번갈아 봤다.
희경이 학교에서 오기 전까지는 희숙이 보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희경이 봤다.
희경어머니 덕에 다른 건 몰라도 생선만큼은 풍족하게 잘 먹게 되었다.
희경은 학교 생활이 즐거웠다.
집에서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수업시간에 더 집중을 하였다.
그리고 숙제나 공부를 쉬는 시간에 틈틈이 하였다.
화장실 갈 일이 없으면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래도 점심시간만큼은 친구들과 같이 도시락을 먹고 운동장에 나가서 함께 놀았다.
희경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기보다는 깊게 사귀는 편이라 정말 친한 친구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