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들여다보는 대화법 2
내 안에 나와 마주하다.
계속해서 몇 시간이고 산호를 바라본다.
바라본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이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왜 기다리는가?
끊임없이 바라보고 묻는다.
왜 끊임없이 바라보고 묻는가?
기다림의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간다.
왜 기다림의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가는가?
나 혼자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 서로가 함께 만들 길 바래서이다.
왜 서로 함께 만들 길 바라는가?
인간의 친숙함이란 것이 베어 나길 바란다.
왜 인간의 친숙함이 베어나길 바라는가?
매일 먹는 쌀밥처럼
매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 신는 슬리퍼처럼
누구나가 하나 즘
'나도 가지고 있지'
'나도 저러는데...'
'나도 보았지, 나도 그래’
나도 그렇게 느끼는데'
하면서 같은 기억의 간지럼을
살피고자 한다.
왜 여전히 내가 보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려 하는가?
나는 무얼 표현하고자 하는가?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내가 산호가 되고 나는 그림 속에서 무언가를 그저 바라만
보며 다소곳이 바라다본다.
왜 그 바라다봄이 기다림을 지나 더러는 체념했고, 더러는 막막했고 어느 날엔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쩌면 다소곳이 앉아 있던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손을 놓고 있었지는 몰라
그래서 더 물었지. 그래서 더 기다렸지.
하얀 에스키스 북을 넋 놓고 보면서
우둑 허니 말이 없는 산호를 그려 놓고도 마냥 기다렸어
"도대체 나 보고 어쩌란 말이야 "
막막했지. 지루하기도 하고, 피곤하고 지치면서도
난 태연한 척 잘 견디는 중이야.
두렵기도 했어. 이러다 영영
이대로 멈춰 버리면 어쩌나!
아니 그냥 차라리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말 한마디를 발견하기 위해 버텨야 했어
잠시 무의식 중에 그려 놓은 ‘산호 사람’의 손에 눈이 갔지.
기도를 하고 있었어.
왜 기도를 하는 모습을 자주 그리게 되는가?
내가 무언가를 소망함으로
왜 무언가를 소망하며 기도하면 두 손을 모으는가?
두 손을 모음으로 인해 소망들을 손에 모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나는 가지런히 모은 손 위에
물고기를 그려 주었나?
왜 내 품 안으로 들어오렴. 하며
물고기를 안아 주었나?
산호가 물고기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과 산호 사람이 손을 내밀어 물고기를 안아 주는 것은 왜 다른가?
드디어 산호가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닌
"세상을 안아 주다."
내가 이제 것 말해 왔던 세상을 품고자 함에 난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가?
왜 품고자 하면서 바라만 보았는가?
안아 준다는 것을 아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왜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일상이 그림으로 표현되길 바라는가?
내가 행하는 모든 것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나 답기에 그렇다.
왜 손으로 안아 주니 산호의 마음이 따뜻해지는가?
이제 내가 스스로 마음을 엽니다.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내가 걸어야 할 길에 대해 마음을 두드립니다.
나는 홀로 바다 숲을 걷고 있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이제 보이지 않던 끝도 없는 행로 위에 놓여 있지 않아도 됩니다.
난 혼자가 아니었음에 손을 내어 드립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나 역시 세상이었음을....
나의 그림 속에서도 세상과 손을 마주 잡고 있겠습니다.
어떤 산호이고 싶은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창자 끝까지 시원하게 비워내고 싶다.
온통 근심과 미움 시끄러운 잡념으로 채워진 흔들리는 영혼들
별거 아닌 일에 복잡해지고 뇌가 꽁꽁 묶여 버리고.
마음은 쓸데가 없어지고 별것을 잊고 살아진다.
그것들을 들고 저 깊은 바닷속으로 침몰한다.
나는 지금 산호가 되어 흐르고 있다.
상상하라.
끝없이 넓고 청명하며 자유로운 아름다움을
이 과정이 하나의 시나리오처럼, 나의 그림을 보는 이의 마음에 선물하고자 한다.
작가 노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