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질이 먼저가 아니라 그려야 소질이 생긴다
그림은 인격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해요.
그림은 소질이 없어서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요.
우리 아이가 그림을 너무 못 그려요.
…
종종 그림이 잘 그리는 사람의 특권처럼 여기며 묻는 질문이죠.
그림의 소질이 그림의 가치를 결정짓는다는 결론에서 비롯된 말이에요.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수줍어하는 이들은 데 놓고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하죠.
과연 그림에 소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가슴이 설레는 사람이라면 저는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말해요.
감상을 할 수 있으면 그릴 수 있다고. 그림에 소질이란 끊임없이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요. 세상을 감상하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림을 그리길 추천해요.
삶을 감상하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피아노 연주 실력이 비슷한 두 명의 아이가 있어요. 한 아이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꿈을 키우고 한 아이는 선생님이 되었죠. 피아니스트가 되어 음반을 내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매일 연습한 아이는 연주자가 될 수 있어요. 선생님이 된 아이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잊고 아이를 가르치는데 여념이 없이 살아가요. 10년 지나고 또 10년 지나면 피아니스트가 된 아이는 많은 연습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고, 음악으로 삶을 만들어 가죠.
반면 피아노 선생님이 된 아이는 피아노 연주만을 위해 모든 것을 전념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살피죠. 선생님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는 피아노를 잘 친다고 말하지 않아요. 하지만 선생님에게 더 특별한 삶에 언어가 존재하죠. 삶의 방향성의 차이지 결코 잘하고 와 못하고의 문제는 아니에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매일 연습하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으면 재능을 누릴 수 없잖아요.
그리곤 선생님께서 시간이 지나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생겼네요. 그리곤 음악서클에 모여 연주를 하고 음악을 나누기 시작했어요. 연주를 하는 것 만으로 삶이 행복해졌고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이 제2에 음악의 삶이 되었어요. 과연 음악으로 성공해야만 음악을 즐기는 것일까요? 작가로서의 연주자만이 의미가 있는 걸까요? 음악이란 삶에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우선이라면 선생님에게 찾아온 인생에 후반부에 음악은 꿀빛 행복인 샘이죠.
두 삶의 가치를 비교할 수 없어요. 단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질이라 말하고 매일 지속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해요.
피아니스트는 매일 10시간에 가깝게 손가락과 손목에 마비가 올 정도로 연습을 하죠. 이것은 재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향 기질이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혼신을 다해 즐기고 치열하게 노력하죠. 피아니스트와 음악을 즐기는 자의 차이는 소질이 먼저가 아니라 즐기는 것을 넘어 치열하게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것이에요. 매일 연습을 실천해야 소질이 생기는 것이죠.
사람들은 매우 쉽게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말해요. 단 5분씩이라도 매일 그림을 그려 보지 않고 내린 결론이죠.
잘 그린 그림을 보면 그림에 재주가 있어서 잘 그리시는 군요. 하는 말과 함께 그림을 그려 보려 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연주자와 같이 한 가지를 날마다 열정을 가지고 연습을 하지 않아요. 재능이 없고, 시간이 없고, 다음에는 또 무엇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죠.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매일 감상하고 그리지 않으면 제 아무리 소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기를 누리지 못해요.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리는지 사람들이 알면, 그림을 잘 그린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죠. 먹고 그림만 그린 샘이에요. 평생을 목숨 바처 그린 그림이죠. 실행을 하느냐와 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에요. 그렇다고 여러분께 그림을 목숨 바처 그리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반드시 그림이 아니어요 좋아요. 소질이 없어서 못하겠다는 이유를 떨쳐버리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 시대의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와 같아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성품,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죠. 이것이 극도로 잘 그린 그림 순으로 그림을 평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해요. 사람의 인격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과 같아요. 그러기에 누구도 그림에 소질이 있다 없다를 말해서는 안돼요. 단지 스스로가 그림을 그리는데 자신에게 맞는 취향과 언어를 찾지 못했을 뿐이죠. 이유는 단 하나 그려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려 보지 않았으니 자신의 마음을 드려다 보지 못했을 뿐인 거죠.
'잘 그리고 못 그리고'라는 세상의 잣대로 자신의 평가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내 마음을 타인에게 비추어 표현하기에 생기는 감정이에요. 그림 같이 예쁜 이상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죠. 그림이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만은 없어요. 스스로의 마음 끝에서 닿아지는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에요. 자신의 생각을 담지 못하고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면 그림이 어렵고 즐거울 리 없어요.
저는 그림에게 말을 걸어 보자고 해요. 넌 누구니?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네 생각을 그려봐. 아름다움이 다는 아니야. 내 마음을 표현하고 알아내는 것이 그림의 시작이란다. 화가 나면 화가 난 마음을 행복하면 행복을 고민이 있고 답답하면 답답함을 마음에게 묻고 표현하는 거야. 그저 누군가가 그려 놓은 장미 꽃잎의 장수를 세고, 잎의 모양, 색감을 똑 같이 복제하는 것만이 그림은 아니란다.
마음에게 생각을 묻지 않고 아름다움만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마저 옆집 아줌마에게 어느 감정이 좋은 거냐 묻고 물건을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자신만의 색과 향기가 없는 물건은 오래가지 못해요. 얼마 가지 못해 새로운 물건을 기다리죠. 내 존재를 알지 못해 항상 굶주린 영혼 사이에서 이상을 좇으며 살아가기에 빗어지는 일이에요. 결국 자신의 그림은 그려보지도 못하고 그림 그리기를 멈춰요. 그림을 통해 내면을 바라보지 못해서 그래요.
그림작가는 소질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지 않고는 못 백여서 미치도록 그려야 하는 사람이라서 그림을 그려요. 그렇지 않고는 불안하고 외로운 길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리기도 해요. 그림 그리는 작가에게 기도와 같아요. 기도를 하듯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죠.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하듯 그림을 그려요. 잠시라도 주춤거리면 기도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금세 불안해지거든요.
여러분에게 이와 같이 마음을 설레는 일이 있다면 꼭 그림이 아니어도 좋아요. 수많은 마음의 대화법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어요. 그중 나에게 맞는 마음 사색의 방식을 선택하면 돼요.
그림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지금 내 손에 쥐어질 수 있는 도구로 그림을 그려 보세요. 그것이 반드시 스케지북과 미술용 연필이 아니어도 좋아요. 저는 늘 아이들이 쓰고 아무 데나 놓은 캐릭터 연필로 그림을 그려요. 소질은 내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용기 하나면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