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참 운이 좋게도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미술실에 가서 그림을 배웠어요. 고등학교 3년을 미술실에서 무료로 그림을 그렸고, 방학 동안에만 학원을 다녔죠. 더없이 큰 행운이고 제 찾아 온 첫 번째 기회였어요.
전 제게 찾아 온 기회를 잡은 샘이죠.
안타깝게도 지금은 제게 첫 번째 은인이셨던 스승님은 하늘나라에 가고 안 계시네요. 이 시간을 빌어 고인이 되신 조수행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봅니다.
"고조수행 선생님 감사합니다. "
그렇게 시작되었던 그림은 IMF 이후 작은 사업체를 잃게 되신 부모님께 기대기 어려워졌어요. 제가 98학번이거든요. 그래도 제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운명이 닿았나 봐요. 대전에 사립미술대학인 꾀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4년 장학금을 받게 되었죠. 성적이 좋지 않아 기숙사 신청을 해 놓고도 가슴 졸였는데 덜컹 기숙사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제 편이 되어주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언제나 세상은 절 위기의 상황에서 도와주었네요.
대학교와 같이 대학원 역시 아르바이트와 조교를 하면서 갖갖으로 졸업했어요. 부모님의 도움은 ‘네가 할 수 있으면 대학원에 가라’라는 말씀 한 마디뿐이었죠. 그 말씀은 제게 지금까지 큰 에너지가 되고 있어요. 제 삶을 스스로 꾸릴 수 있도록 힘이 돼준 말씀이였죠.
때론 잘난 부모의 조언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던한 부모의 한 마디가 최고의 조언이 되더라구요.‘네 인생을 네가 더 잘 알지. 엄마는 너를 믿어’라는 무언에 메시지가 가장 큰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견디기 힘겨운 20대 후반에 그림보다 더 달콤한 사랑을 만나고 결혼을 했어요. 결혼 전엔 안 입고 안 먹어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은 그림이었죠. 결혼을 하고 나니 안 먹이고 안 입힐 수 없는 아이들 때문이라도 그림 그리기 어렵게 되었어요. 여전히 그림 그리기는 돈 많은 사람들의 사치쯤이라는 생각을 저 역시도 떨쳐지지 못했나 봐요. 그런데 아이들이 점점 커 갈수록 제 자신이 저를 조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죠.
'너 지금 뭐하고 있니?’, '앞으로 뭐 할 거야’, '너의 정체가 뭐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그래서 무턱대고 다시 붓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0년을 결혼과 육아로 그림이 멈추고 말았지만 제 마음속에는 단 한 번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곤 그림을 막 다시 시작하려는 참이었어요. 신랑의 벤처사업 시작과 자금난을 겪게될 무렵 퇴사 한 회사에서 구속영장이 날라 왔죠. 덜컥 앞에 불어닥친 일들은 두려우면서도 어떻게든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보다 더 큰 걱정은 그림을 다시 펼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제게는 가장 큰 현실로 다가왔죠. 하지만 그렇게 가슴 저미는 날들로 채워질수록 더 악착같이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이 제 마음을 들어주는 마지막 끈이 된 샘이죠. 어쩌면 그림과 더 가까워지고 진솔한 대화를 시작하는 첫 단추가 된 샘이에요. 그림에게 이야기했죠. ‘대체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어떻게든 살아지지 않겠냐고요’, ‘다들 그럭저럭 산다고요’ 그래도 그 가슴에 멍울은 지워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켜켜이 가슴 한켠에 쌓여져 내 모습을 닮은 집채만 한 검은 우주가 제 앞에 있었어요.
시어머니와의 관계 육아와 산림이 주는 분노는 나를 더없이 초라하게 만들었어요. 더욱이 그 분노는 혼자 오롯이 있을 동안에도 찾아와 나를 괴롭혔고 그렇게 매일같이 반복된 시간은 나를 분노 덩어리로 만들어 버렸어요. 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들로 나의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화를 담고 있어야 하는지 세상 답답했죠. 분노를 담고 있는 시간은 사치라고 주문을 외웠어요. 분노로 내 작음 마음을 담기에는 내가 정말 딱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내 작고 작은 혼자만의 자유를 그림으로 채워가길 간절히 바랬어요.
그리고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이 되길 바라며 세상을 들여다보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보고자 했어요. 엄마의 삶, 희생, 사랑, 가족, 우리라는 단어들이 제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죠. 더 이상 제가 겪는 생활은 고충도 시련도 아니고 제 그림에 소재가 되고 행복이 되어가기 시작했어요. 이 시간을 충실이 견디고 즐겨야 제 그림에 온전한 사랑이 느껴지고 사람들에 그 사랑을 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제 삶은 더 이상 하찬치도 의미 없지도 않았어요. 내가 살아가는 삶 하나하나가 우리네 들이 살아가는 삶이고 애환이라면 나는 그 삶을 곱씹고 받아들여야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그 덕에 제 삶은 특별해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림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어요. 제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조차 모르죠. 그런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아요. 때론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조차 잘 팔리지 않죠. 혼자 하는 이야기, 혼자서 하는 파티 이런 걸 즐길 형편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척박한 시간 속에 제가 전시를 하고, 그림을 팔아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준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었어요. 아주 우습죠. 제까짓 그림이 뭐라고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죠.
그런데 이상해요. 왜 전 자꾸 내 그림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포근함과 평온함을 주려 하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림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조차 힘든 제 처지에 말이에요. 그래도 쉬지 않고 개미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러다 내가 갖은 최고의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라는 '백만장자 메신저’ 책을 읽게 되었어요. 먼지를 안고 쌓여가는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인의 조언을 통해 블로그에 글과 그림을 나누기로 했어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그림들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림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하고 행복을 느껴야 그림의 본연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다지기 시작하면서 제 그림도 편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림이 움츠려 쪼그라진 제 가슴을 편안하게 감싸고 안아주었죠.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일들이 제게 펼쳐졌어요. 여전히 31평에 시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거실 전체를 작업실로 사용하는 제 그림 인생이지만 전 이 삶에 누구보다 행복하고 감사해요. 누군가에게 그림이 여가이고 취미이지만 제게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그림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