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영감이 되기까지

마음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기

by 엄마작가 선영



작가의 삶이 작품이 되죠. 작가의 성향, 사고방식 어떠한 틈으로든 작가의 모습을 그림에 담게 되어 있어요. 3살 아이부터 누구라도 손에 연필을 들으며 생각하는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오기에 그러해요. 그런 예술이 주관적이라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부정하지 않죠. 자꾸 자신만의 암호라도 만들어 누구든 알지 못하는 나만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일까요?
이런 암호와도 같은 그림을 우연히 마주친 전시장에서 선뜻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탓할 수도 탓 해서도 안돼요. 각자의 삶이고 취향일 뿐인 거죠.
어쩌면 작가들은 잦은 자기도취에 빠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결론짓기도 해요. 저 또한 그것이 예술가의 특권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기가 멈춰진 10년을 돌이켜 보건대 전 예술가도 예술을 즐기지도 못하는 평범한 엄마였죠. 고급스러운 것과, 우아한 좌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어떻게 하면 100원이라도 아끼려고 가격비교를 해서 저렴한 물건을 사기에도 바빴죠. 예쁜 것보다 실용적인 물건을 선호했고, 백화점 보다 시장을 더 자주 가야 하는 주부였어요.

제가 우아한 아름다움, 예술적 깊은 사유를 그린다는 것은 거짓에 불과했어요. 제아무리 좋은 약도 내 몸에 받지 않으면 탈이 나는 것과 같죠. 어쩌며 그간 저는 제가 소유하고 싶고 갈망하는 것들을 과시하듯 표현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의 마음도 고스란히 그림에 담겼겠지요. 하나도 숨기지 못해요. 그림 앞에 서는요. 글도 마찬가지죠.

솔직해져야 해요. 도화지 앞에 서 만큼요. 갖고 싶은 것, 원하는 것 욕망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닌 오늘에 내게 담겨 있는 것을 감상하듯 그리는 거예요.
그렇지만 넘쳐나는 정보들 사이에 내 것을 찾는 것이 막상 쉽지는 않아요. 세상은 나와 상관없는 것들의 천국이잖아요. 지금 당장도 눈에 보이는 것을 자꾸 따라가게 돼요. 내 것을 찾으려 해도 찾아지지 않고, 내 것인 양 자꾸 뭐든 따라가게 되죠. 월요일엔 꽃이 예쁘고, 화요일엔 구두가 예쁘고, 수요일엔 케이크가 예뻐요. 언뜻 보면 나와 상관있어 보이죠. 하니만 사유 없는 꽃과 구두, 케이크는 내 것이 되기도 하고, 네 것이 되기도 해요. 한순간에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하죠.
그럴 땐 삶 속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세요.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고 내가 원하는 모습인지요.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왜 좋아하는지 적어보세요. 일상을 적어보고, 그 안에 내 감정이 어떠했는지 적어 보세요. 그럼 같은 꽃을 그려도 어떤 꽃이 내 모습과 하나가 되는지 알 수 있어요. 나와 닮은 것들을 표현한다는 것은 나를 표현하고 소개하는 것과 같아요. 자꾸 나를 불러주고 표현해 주는 것은 내 마음을 볼 수 있고 마음의 감정을 읽어주고 들어주는 것과 같죠. 작은 선 만으로도 감정이 드러나요. 계속해서 내 마음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이것이 그리기의 생명과 같죠.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던 무렵, 내가 품은 내 모습 보다 내가 좇는 무언가에 분주한 것은 아닌가 질문으로 가득했어요. 음악이 좋으니 소리를 담고 싶어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색소폰을 그렸죠. 누군가에게 선뜻 받아온 나와 닮지 않은 잔을 그려 보기도 했어요. 놀랍게도 그 작품은 선물한 분의 이미지를 담고 있었죠. 무엇이 나답지 않은 것들을 선택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조급함이었고, 내가 감동하는 모든 것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탐하고 필요하니까 취하는 것은 그림에 충분조건은 아니에요. 생명을 담은 대상은 내 뼈 속 깊이에서 체취 돼요. 내 모습을 정확히 느끼지 못하고 세상밖에 사연들을 빌려 내 마음을 채우다 보면 감탄은 줄 수 있지만 공감을 부르기는 어려워요.
진짜로 많아요. 좋은 것, 아름다움 것들이요. 그 안에서 함께 어울려야 하잖아요. 너무 커도 너무 작지도 않게요.
어느 날 친구의 말이 궁금증으로 다가왔어요. 대중의 눈 높이를 맞추면 그림의 수준이 낮아진대요. 대중에게 그림의 수준을 맞출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요. 사실 저도 그런 줄 알았죠. 이 시대의 예술은 그런 건 줄만 알았죠. 어디서 배운 적도 없는데 그랬어요. 무엇이 잘 못인지 몰랐던 거죠.
이제 와 질문을 해봐요. 누구를 위한 예술을 하고 싶냐고요. 예술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이오? 전 그런 사람들을 알지 못해요.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과 상관있지 않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 잘난 그림 따윈 거들떠볼 필요도 없을 만큼 재미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더없이 기다렸죠.
그림을 그리려면 자신에게 집중을 해야 하는데 살다 보면 그러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생겨나면 내 아픈 상처를 보게 되고 내 삶을 지탱하기 위해 스스로와 대화를 하게 돼요. 힘들 때 기도를 하는 것과 같죠. 기도를 하고 나를 위로했어요. 나 스스로에게 사랑을 주었죠. 나에게 집중하니 아픈 내 모습을, 견뎌내는 모습을, 사랑을 원하는 모습, 사랑을 주는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어요. 내가 격은 일상이 사람들과 상관있는 일이 되기 시작했어요. 슬픔과 사랑에는 싸구려가 없잖아요.
아픈 내 모습까지 사랑하고 집중해 보세요. 예쁘고 멋진 내 모습이 전부가 아니에요. 슬플 때 슬픔을 표현해 보니 기쁠 때 기쁨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오늘 내 감정을 그림에 그리는 것이죠. 늘 멋져 보일 수 없어요. 멋져 보일 필요도 없죠. 그저 내 감정에 집중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림으로 말을 하는 것이죠. 당신이 슬픔을 드러내는 색은 무엇인가요? 슬플 땐 무얼 그리고 싶을까요? 아무도 물어주지 않는 감정을 혼자서 그려내는 것은 내 생각을 들어주는 거예요. 언제든 내 마음 대로요. 참 특별한 일이죠. 당신은 언제나 소중하다는 것을 그림에게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