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2살 아이와 한참 아이들과 곤두박질치는 날들에 그림 앞에서 툭하고 튀어나온 말이었습니다. 평생을 그림을 위해 내 달려온 제 입에서 고작 나를 위한다는 한 마디었습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림에 끈을 놓을 수 없어 숙제처럼 1년에 한 작품 전시를 했습니다. 붓을 놓는다는 것이 무엇이지 생각할 겨를 도 없었기에 잡고만 있었습니다. 틈을 내고 지켜낸 유일한 시간은 아이들이 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그 소중한 시간 저를 불러 세웠던 빈 캔버스 앞에서 제 솔직한 한마디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나를 표현하는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위한다는 그림을 그렸던 그 시간이 가장 혼란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림만을 위해 걸어왔던 제가 갈 길을 잃고 고개를 들며 올려다봅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눈을 감습니다. 제 마음을 외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충실이 살아내는 것이 내 마음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들추지 않았었을 마음이었기에 그림이 저를 더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생각나는 것이라곤 내 마음만치 작은 줄지어 가는 개미들입니다. 아이처럼 저 마음도 개미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갑니다. 그렇게 개미에게 마음을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작은 내가 되어 개미를 따라갑니다. 복잡했던 기억들도 제 마음같이 작아졌을 것입니다. 조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제 마음도 개미처럼 부지런히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개미는 화분 사이를 지나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화분 밑으로 사라지는 개미를 떠나보내고 나니 베란다에 다육이 보입니다. 겨우내 살피지 못했던 화분에서 봄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작은 화분을 바라보며 이야기합니다. “어머! 새순이 돋았구나. 귀엽다. 신기하다. 대견하다. 참 아름답다. 너는 이렇게 작고 아무 말도 안 하지만 힘차게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구나.” 다육은 나의 말을 들어주고 내 마음을 보드랍게 감싸주었습니다. 작은 생명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간 누구에게도 내 작은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는데 다육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아이의 새끼손가락같이 작고 보드라운 새눈이 나올 때마다 식물들에게서 생명의 기운을 얻곤 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생명도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구나. 하며 미소가 지어집니다. 제 작은 마음에도 생명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날 작은 다육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을 딛고 돋아나는 작은 희망의 발견을요. 이것이 제 작은 마음에 닿은 엄마가 되어 제 마음을 감상한 첫 번째 기억입니다. 그리곤 저는 매일 같이 다육을 들여다보고 말을 걸고 미소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먼지를 제거해 주고, 벌레를 잡아주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명을 키워내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것만이 육아가 아니었습니다. 식물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키우는 것 역시 제게는 육아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화초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 있었구나. 하며 작은 감동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그림도 아이를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보고 매일 느끼는 것을 캔버스에 그리는 것입니다. 그날에 감정을 담아 따뜻하던, 차갑던 내가 느꼈던 진솔함을 그립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엄마입니다. 따뜻한 엄마 품처럼 잔잔한 사랑이 느껴지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매일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엄마 작가스러운 작품의 시작이었던 모양입니다. 아이를 키우지 않은 작가의 그림은 또 다른 세상을 감상한 생명이 그려집니다. 매일 감상하고 감동하고, 감상하고 감동하고를 반복하는 것이 그림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제 마음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날에 막막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지금 빈 캔버스 앞에서 망설여지고 흔들린다면 잠시 손을 내려놓고 마음을 감상하는 날들을 만나보세요. 하루 종일 빛을 쪼여 보는 것도 좋습니다. 수첩에 오늘 내게 기분 좋은 것들을 기록하고 그려 보는 것도 좋습니다.
씨앗을 심기 위해 밭을 갈고 퇴비를 줍니다. 한 해 농사를 짓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농사를 짓기 위해 어떤 씨앗을 심을지 내게 필요한 종자를 고르고 그 해 수확에 들어가는 필요한 것들을 미리 예상합니다. 그림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짓고 싶은 농작물을 이것저것 한데 썩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내게 꼭 필요한 종자를 선택해 그 종자에 맞는 땅을 고르고 길들여야 합니다. 물이 없는 메마른 땅에서는 벼농사를 지을 수없습니다. 질척한 땅에는 사과나무가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림도 각자의 마음의 밭에 맞는 씨앗이 있습니다. 그 씨앗을 고르고 매일 살피며 길러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운다고 밑도 끝도 없이 보이는 대로 우유병을 그리고 기저귀를 그릴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농부가 땅에 특성을 살피고 어떤 농작물이 적절할까를 살피듯 작가 역시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만의 마음 밭에서 탁월한 농작물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농작물을 선택하는 것인지 고심한다는 것은 참 중요함입니다. 한 해 농사를 결정짓기 때문이겠지요.
짐을 챙겨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눈빛 앞에서 발견되고 펼쳐지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감상해 보세요. 마음 감상은 누구도 참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 마음은 주인이 되어 보세요. 감상하는 대로 펼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