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게 아니라 헤어진 거예요

by 여름

일요일 오전 10시를 넘어가는 시간. 늦잠 자고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물티슈로 테이블을 닦으며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엄마, 멍멍!”


둘째가 가리킨 TV 속에는 믹스견인 누렁이 한 마리가 배를 뒤집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사람이 그리웠던 아이였는지 한참 사람 손길을 즐기던 누렁이는 대뜸 벌떡 일어나 길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 누렁이의 까만 눈이 시골 길목 끝에 고정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지가 버려진 것도 모르고, 매번 저렇게 기다려요.”


아니나 다를까 누렁이는 유기견이었다. 화면 속 50대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연신 누렁이를 쓰다듬었다. 누렁이는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염없이 길 위에서 섰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TV 속 배경이 낮에서 저녁으로 바뀔 뿐 줄곧 제자리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밖에 없다는 걸 아는지 누렁이는 기다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MC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주인이 너 버리고 간 거래. TV 속 아주머니와 MC들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누렁이는 오늘도 내일도 주인을 기다릴 것이다.


TV에서 시선을 거두고 테이블을 마저 닦는데 익숙한 성우의 목소리 속에 ‘버려지다’라는 단어가 귓가에 날아와 꽂혔다. 다트 촉이 다트판 정중앙에 박히듯 날카롭고 정확하게. ‘버리다. 버려지다. 버림받다.’ 세상에 이보다 더 비참한 말이 또 있을까? 더는 쓸모가 없어 어딘가에 내던져지는 처지. 테이블을 닦은 물티슈를 버리려고 쓰레기통 뚜껑을 열 자 그 속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서로 엉켜 있었다. 재활용도 할 수 없는 그냥 버려진 쓰레기들. 버려졌다는 것은 나에게 이런 느낌이었다. 쓸모없어 버려진 더럽고 냄새나는 것.


너 엄마가 버리고 갔잖아! 초등학교 친구가 홧김에 던진 말. 그렇다고 제 딸을 버리고 가? 독한 년이야. 명절에 전을 부치다 내 눈치를 보며 작은엄마에게 말을 건넨 먼 친척 어른의 말. 아무렇게나 던져진 말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사람은 그 사람들의 손가락 끝에 걸려있는 나밖에 없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엄마가 버리고 갔다는 사실보다 차라리 엄마가 죽고 없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내가 홀로 남겨진 것이라면 그 누구도 ‘버렸다’라는 말은 쓰지 않을 텐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난 그 어떤 쓸모와 단 한 톨의 애정도 없이 버려진 껍데기만 남은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안녕, 잘 지내. 하는 상투적인 인사나, 사랑해서 헤어지는 거라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인사도 없이, ‘엄마 열 밤만 자고 올게’하며 금방이라도 다시 만날 사람처럼 엄마는 나를 떠났다. 누렁이 주인도 그랬을까. 길가에 누렁이를 내려놓으며 꼭 다시 찾아올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선 그렇게 떠났던 것일까. 다정한 인사라도 있었더라면 우리는 떠나는 이들의 등에 대고 손이라도 흔들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여섯 살의 나는 내게 전부였던 세계와 작별하고 많은 밤을 울었다. 가족이 바뀌고 집이 바뀌고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내게 불던 바람도 햇살도 비와 눈과 공기와 온도까지, 내가 6년 동안 엄마와 함께 경험했던 모든 것들과 달랐다. 몸은 이곳에 있어도 마음은 자꾸 잃어버린 세계를 찾으려 어두워진 기억을 더듬거렸다.


할머니 댁에 처음 갔던 날, 나를 두고 떠나려다 차마 그러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가던 택시 안에서 아이처럼 울던 엄마의 눈. 홍수에 모든 물건이 떠내려가고 텅 비어버린 가게 안을 서성이던 엄마의 발. 미싱 기계 앞에서 종일 페달을 밟고 있던 엄마의 굽은 등. 오직 나만이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 초등학교 때 나의 친구도, 먼 친척 어른도,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엄마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겨우 스물여덟에 남편을 잃고 딸과 단둘이 남겨졌던 여자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아이를 버렸다고 비난하고, 나에게 버림받았다고 동정했다. 오히려 나를 버린 건 ‘버려졌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의 입과 손가락이었다. 아빠, 엄마, 아이로 구성된 가족만이 정상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엄마, 아빠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던 사람들.



사람들의 손가락에 상처 받은 여섯 살의 나를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저 상처 받은 채로 울기만 하면 나는 결국 사람들의 말처럼 버려진 아이로 남을 것이다. 조금씩 말라가는 눈물을 닦아내며 모두가 손가락질하던 그 등 뒤로 손을 흔든다. 돌아오지 않을 인사말을 홀로 외쳐본다. 엄마. 안녕. 엄마. 잘 가. 한때 내게 전부였던 나의 세계여 안녕. 웅크린 채 울고 있던 여섯 살의 나는 어른이 된 나의 손을 잡고 조금씩 앞을 향해 걷는다.


나는 버려진 게 아니라 헤어진 것이다. 조금씩 까만 기억들과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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