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세 번째 태어난 거다? 알아?”
한글 문제집을 풀던 아이가 대뜸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설마 ‘환생’을 말하는 건가 싶어 “환생했다는 거야?”라고 물었다. 아이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음.. 아니. 근데 내가 세 번 태어난 거야. 첫 번째는 햄스터였고, 두 번째는 사자였어.”
그게 환생이라는 건데, 속으로 생각하며 아이가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두 번 죽었는데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사람으로 태어난 거야. 사자였을 때는 너무 힘들었고, 햄스터였을 때는 차에 치어서 죽었었어.”
장난기 없는 아이의 진지한 표정 때문에 진짜일 리 없는 그 말이 진실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내게 엄마 배 속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종종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심심할 땐 TV를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는 둥 너무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있었다는 둥, 믿을 수 없지만 어쩐지 믿고 싶은 귀여운 이야기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 배에 그렇게 많은 살림살이가 있어 살이 안 빠지나 피식 웃곤 했다.
“사자였을 때는.. 달리는 게 진짜 힘들더라.”
마치 옛 전성기를 회상하는 듯한 아이의 표정에 웃음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럼 어떻게 엄마한테 오게 된 거야?”
아이가 문제집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봤다. 음-하며 눈을 굴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하늘나라에서 차례를 기다렸는데, 천사가 넌 이쪽으로 가라~해서 내려왔지.”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난 평생 그 말을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환하게 웃었다. 설렘에 가득 찬 얼굴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아기 천사의 얼굴이 상상되었다.
“고생했네. 우리 아기.”
난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천사의 명을 받아 나를 찾아온 아이. 햄스터였다가 사자였다가 겨우 사람이 되어 나를 만나러 온 아이. 맞닿은 가슴에 동동거리는 아이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아이 몸 안에 나는 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이면 내 마음 안쪽에 경이로움이 피어나는 것 같다.
“엄마도 원상이 많이 기다렸어.”
사실일리 없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이런 순간들이 앞으로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고이고이 접어 오늘을 보관하고 싶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어디선가 한 생을 살아가고 있는 아기 천사들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