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아이가 학교에서 학생 기초 조사서를 받아왔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학생 기초 조사서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보호자란에는 당연하다는 듯 부/모가 명시되어 있었다. 나는 부모란에 나와 남편의 인적사항을 적으며 이곳을 빈칸으로 놔둬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는 보호자란이 비어있는 아이였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 대신 가정환경조사서를 써야 했던 나는, 부/모라고 적인 곳엔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다. 나의 보호자는 할머니였지만, 나는 ‘기타 가족사항’에 할머니 이름을 적어야 했다. 기타 가족. 할머니는 내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학교에선 나의 할머니를 주요 사람이 아닌, 그 외의 나머지 사람으로 만들었다. 순간,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내에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뿌연 안개처럼 내게 다가왔다. 낯선 상실감에 쥐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고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텅 빈 공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무의 이름이라도 써서 채워두고 싶지만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마음속에도 커다란 공백이 생긴 것 같았다. 벌써 30년도 훨씬 지난 일인데 어느 집 거실에선 나처럼 엎드려 있는 아이가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서늘해졌다.
사람들에게 ‘조손가정’이나, ‘한부모가정’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고, 어떤 이는 스스로 선택하여 누군가와의 혼인을 거부한 채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데, 보호자를 과연 부와 모로 한정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왜 아직도 학교는 보호자를 부모로 명시하고 있을까. 왜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까. 우리 가정의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의 학생 기초 조사서를 써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내 아이가 언제까지 부/모란을 채울 수 있는 아이일지. 나는 살아 있기에 언제든 죽을 수 있고, 이혼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죽거나 이혼을 하게 된다면 내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모가 명시되어 있는 그곳을 공란으로 두어야 하는 아이가 될 것이다. 모든 아이가 그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쉽다. 보호자를 그저 보호자로 두는 것. 아이들에게 부모가 당연하지 않은 것. 그것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섬세하게 아껴주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여린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배려하고 살펴주는 어른들이 세상에 더 많아지기를. 아이의 가방에 서류를 넣으며 내년엔 다른 기초 학생 조사서를 받아 볼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