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에서 만난 나의 지니
평소에 액세서리를 잘하지 않는 내 손목에 팔찌 하나가 걸려있다. 나무 색깔의 끈에 중심엔 새끼손톱보다 작은 육각형의 플라스틱 조각이 묶여있다. 거기엔 아주 작은 글씨로, 소원성취, 건강부적, 돈버는부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고, 글씨 위엔 부적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팔찌는 만 오천 원짜리 팔찌로, 이번 경주여행에서 사 온 것이다. 불국사를 나오며 정문 초입에 기념품 가게에서 사게 되었는데, 불국사 굿즈는 뭐가 있으려나, 구경만 해보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홀린 듯 구매하게 되었다.
가게 안 벽면엔 여러 가지 팔찌들이 가득 걸려있었다. 차고 다니다가 끈이 끊어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팔찌는 만원. 건강을 지켜준다는 팔찌도 만원. 건강과 부, 소원이 이뤄진다는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팔찌는 만 오천 원이었다. 스님이 쓰실 법한 알이 굵은 염주는 오만 원이 훌쩍 넘었다. 소원을 이루는 데에도 돈이 드는구나. 나는 이번 여행의 이벤트로 불국사 안에서 등을 하나 달고 싶었는데 ‘100일에 30만 원’이라는 문구를 보고 포기하고 돌아섰던 차였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하나 살까.” 나는 중년 여성들이 찰 법한 형형색색의 구슬이 달린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휴게소에서 마주쳤다면 분명 그냥 지나쳤을 텐데, 장소가 ‘불국사’여서 그랬는지 ‘어쩌면 진짜 이뤄질지도 몰라!’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중 가장 무난하면서 포장이 근사하게 되어있는 팔찌 하나를 골랐다. 만 오천 원짜리 팔찌는 돈도 벌게 해 주고, 소원도 들어주고, 건강도 지켜주면서 악귀까지 물리쳐준다고 쓰여 있었다. 만 오천 원에 이걸 다 해주다니. 가성비 너무 좋은데? 남편과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거렸다. 사실 친구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차고 다닐 것 같지 않아, 내 것만 구매하고 나왔다. 나중에 건강 팔찌 하나쯤 속는 셈 치며 차고 다니는 나이가 되면 그때 선물해야지. 그때까지 친구들의 안녕은 마음으로 빌어야겠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팔에 팔찌를 둘렀다. 센스 있는 패션 감각과는 멀어 보이는 팔찌의 모양에 옷소매를 끌어내리며 숨겼지만 나는 내 편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나의 부와 건강을 위해 나와 함께할 내 편. 불국사에서 만난 나의 지니.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조금 막혔지만, 창밖에 초록으로 물든 산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여보 안전 운전해.” 나는 피곤하다며 목을 돌리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지금 우리가 무사히 서울로 올라가는 것.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첫 소원을 빌었고 그것은 별 탈 없이 이루어졌다.
아픈 곳 없이, 사고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황홀한 풍경 속을 거닐던 짧은 여행. 무사히 여행을 즐겼다는 생각이 들면서 만 오천 원으로 이룰 수 있는 소원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평상을 유지하는 것. 유난스러운 일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가 만 오천 원짜리 팔찌를 차며 빌 수 있는 최대의 소원이었다. 팔찌가 없었어도 쉽게 이룰 수 있는 소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의 지니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모두가 무사히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혹시 능력이 된다면 로또 1등도 한 번 생각해 봐 달란 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