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진짜 두근거림이 찾아왔다

인생을 두근거림을 찾아 달리던 어느 날, 진짜 심장의 두근거림을 만났다.

프롤로그

'에너자이저'란 이름의 건전지가 있다. 업무중 중요한 순간에 마우스가 안 먹히거나 현관 도어락이 시끄럽게 울려대기라도 하면, 내 머릿속 파인더는 여분의 에너자이저가 분명 있을거라 주술을 외우며 간절한 탐색을 시작한다.

'제발 있어라, 어딘가에 남은 연료가 한 두개는 있었어, 분명히!'


에너자이저의 장점은 다른 건전지보다 좀 더 오래간다는 점이다. 아니 다른 제품보다 강력한 에너지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선지 활력 넘치는 사람을 '에너자이저'라고 한다. 건전지라는 것은 늘 그렇듯이 세트로 쟁여둔 날들에야 그렇게 소중하지가 않은데, 필요한 갯수보다 간당간당하게 남아있을 때는 매우 아쉬워진다.


사람들 중에도 에너자이저가 있다. 나도 이 이름으로 불린 적이 제법 있는 편이다. 20대의 모토라고 할까. "가보지 않으면 알수가 없지!"가 나를 표현하는 한 마디였다. 친화적이고 사교적인 성격, 혹은 내성적여도 자신이 플레이어로 뛰는 장에서 만큼은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을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에너자이저들은 대체로 남보다는 멀리 높이 뛰려는 생각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번 생 재미나게 살아볼 마음이 가득하다.


오늘, 세상의 모든 자칭, 타칭 '에너자이저' 님들에게 내가 만난 과부하 상태, 심장이 두근거리며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나누려는 생각으로 큰 맘먹고 미뤄둔 타이핑을 시작한다.

2020.10.2. 닥터 희봉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고 싶다던 어느날 올 것이 왔다

가을이 왔다. 코로나 19에 도리어 이때다 하고 더 달려봤다면, 이제 이 달팽이처럼 템포를 늦춰보는 게 어떠한가


어느 일요일 새벽 4시 50분, 갑자기 쿵 내려가는 심장의 두근거림과 함께 내 호흡이 느껴지는 순간이 나를 찾아왔다. 두둥,,당시 쓰기 싫은 논문 하나를 억지로 완성해놓고, 전신 마취가 수반되는 수술을 마쳤다. 휴가 하루 없이 2주간 매일 출근을 했던 상태였다. 그리고 비건(비거니즘 veganism)*식에 하루가 멀다 하고 운동도 병행했다.


리해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전의 나의 일상은 괜찮지 않았다.


나는 그 전에 이미 4년 반이라는 응축된 기간에 석박사 코스를 다 마치고 학술지 논문들까지도 상하반기로 써대면서, 회사를 병행해왔다. 4년 반은 PhD를 하기에는 짧고, 몸이 부숴져라 몰입하기에는 길고 긴 시간었다. 마지막 6개월은 연구와 라이팅을 병행해 박사 논문을 마치고서 언제 어디가 아파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사실 나는 그 전에도 일과 그 일을 함께한 사람들에 빠져 2년은 워커홀릭이었고, 마지막 6개월은 공정거래법전문가과정을 다니면서 역시 충분히 바빴다.


과부하 증세가 나타날 즈음, 나는 한마디로 쉬는 데에도 브레이크를 아주 살살 밟아 궤도를 유지해야할 만큼 난처한 상태였다. 그 순간에도 한동안 엑셀을 밟아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학회에 발표 논문을 준비하고 마쳤으니, 내 스스로를 너무 밀어부친 셈이다.


"오빠, 나 좀 도와줘"

처음 느끼는 진짜 심장의 두근거림이었다. 새벽 4시였다. 스스로 몸을 컨트롤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할 정도의 강렬한 신호에 나는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난생처음 119를 불렀다. 코로나 19로 인해 호흡곤란 증세가 있는 환자는 모두 코호트 격리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안내에 간단히 혈압과 맥박 체크만 하고 다시 집에서 안정을 찾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후 한 달 넘게 나는 오직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해서, 아니 인생을 두근거림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 진. 지. 하. 게. 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일로 새롭게 알게 된 점은 우리 몸은 극도로 세련되고 섬세한 보호장치를 갖고 있으며, 과로나 극심한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삶을 긍정적으로 살더라도 스스로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밀어붙이는 극단적 낙관주의자들에게도 '그만 좀 해!'라는 경고를 확실하게 보낸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인생을 해야 할 것과 해서 별 필요 없던 일로 구분하고 가열하게 달려온 나에게 '대변의 시간과 기회'를 주면서, 나의 경험과 감정들을 편하게 나눠보려고 한다.

비건(비거니즘 veganism)* ; 채식주의자로 한 층 나아가 계란, 우유, 꿀 등 어떤 동물성 단백질까지도 배제하는 베지테리언의 하나로 이해한다. 나의 경우 과부하 상태로 몸이 충분한 영양이 필요한 상황에서 비건식을 했기 때문에 비타민 B12 부족이 왔고, 일시적 갑상선 기능 저하가 온 것이다.


누군가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계속 살면, 심장발작 온다더니..... 웃고 넘길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Message ; 에너자이저라고 할지라도, 제한된 에너지가 있다. 장기적인 과로나 수술 후에는 비건 식을 요령껏 해야 한다. 평소보다 격한 운동도 피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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