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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시간을 미루고 있나요

우리의 직관은 대부분 옳다.

해녀의 들숨과 날숨, 물질


작년 6월, 제주도에 배낚시를 체험하면서 해녀 분께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다.

신나게 놀고 배에서 발을 딛고 땅으로 올라오는 순간 헐렁해진 외투 주머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가벼움의 탄식이 느껴졌다.

'아... 망했다.' 직감적으로 그 가벼움은 바닷속 깊이 떨어진, 얼마 전 일시불로 결제한 핸드폰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우! 그 묵직한 존재감의 갤럭시 폰은 5M 넘게 바닷속 깊은 곳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거기 담긴 많은 기록들과 좀 전까지 작성해 둔 업무들이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이전에도 해외에서 액정이 와장창 깨져서 종말을 맞이한 나의 아이폰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미리 미리 클라우드에 동기화를 해놓을만도 한데, 동기화는 내가 제일 하기 귀찮은 일 중에 하나라서 늘 이렇게 파국을 마주하고 나서야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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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안돼요...어떻게 안되나요?."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장하겠다. 이 깊은 바닷가에서 뭘 물러서지 않냐고 대체!!! 그런데 그 순간 뜻밖에도 쪼그려앉아있는 나를 본 선장님 "꼭 필요한 거죠?"라고 물으시곤, 유창한 제주 방언으로 비번인 누님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15분 즘 지나자 저편 항구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오시는 해녀 한 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 구세주 이시구나!",( 당연히 항구를 따라 이쪽으로 걸어오실 줄 알았는데, 건너편에서 잠수복을 입으시더니 바다를 횡단해오시는 것이었다. 대단한 광경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안되서 수심 5M가 넘는 그 바닷길로부터 내 핸드폰이 육지로 건져올림을 받았다. 그 순간 배낚시 체험 일행들은 다 같은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이 광경을 만든 게 챙피하면서도 한편으로 기뻤다.


그때 가장 가까이에서 해녀의 물질을 보게 됐던 것 같다. 바다 깊이 호흡에만 의지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해녀는 실제 채취를 할 때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멍게나 전복을 100-150Kg 정도를 건져 올리기도 한다니, 실로 놀랍다.

다만 해녀가 바닷속 깊이 바다 밖으로 나와서 숨을 쉬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서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보통 숨이 다 찬 순간에 바닷속 깊이 그럴듯해 보이는 해산물이 눈에 아른거릴 때라고 한다.


이러한 비유를 인생에 비교한 김창옥 강사님의 강연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역시 인생에서 각자의 물질을 하면서 숨을 내쉴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 물위로 올라와야 하는데도 눈앞에 욕심에 '한 번만 더', ' 조금만 더 참자'하는 유혹에 숨 쉴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꼭 생명뿐만 아니겠지, 그러다 진짜 중요한 타이밍 혹은 사람을 놓칠 수 있다.

바로, 내 힘으로 하는 이루는 것이 아닌, 인생의 중요한 우연들 말이다. 내가 개입하지 않고 나는 그냥 그 순간 때마침 거기 있었는데! 하는 그런 것들을 만날 가능성 말이다.


물질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는, 이성보다 직관이 잘 안다


종종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어려움을 갖거나 소위 현. 자. 타임이 온 지인들의 상담을 해주곤 한다.

만약,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문제인 경우에는 이직을 해야 하는데 , 흔히들 "어디 가나 마찬가지겠지요?"라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물질을 그만두고 물위로 나와서 숨을 내쉬어야 하는 경우는 이직을 해야 할 때일 수도 있고 정말 하던 일을 그만 하거나 쉬어야 할 때가 있다. 일주일이 될 수도 있지만, 3개월 아니 6개월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직관이 보내는 신호이다. 마치 신호등이 녹색에서 노랑으로, 그러다 황급히 빨강으로 변하는 것처럼. 이미 빨강 불로 신호가 바뀌면, 그 때부터 변화가 필요하구나 생각하기 쉬운데, 이미 녹색에서 노랑으로 갈 때 처치가 있어야 했다. 빨강불로 변한 후에는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우리의 뇌에는 900억에 이르는 뉴런이 있다. 뉴런은 어마어마한 개수의 시냅스로 연결돼 있으면서 서로 신호를 보낸다. 의식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이성은 매초 의미 있는 몇 개의 정보를 인식하고 이것을 정리해 말로 표현하게 된다. 대게 이것을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라고 한다.


한편 직관이라고 말하는 능력은 이러한 뇌를 속이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는 능력이 있다. 직관은 이성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속도도 훨씬 빠르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정신분석 보고서인 내 마음 보고서에 의하면, "희봉 님은 현상이나 사실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습니다. 한 가지 정보에서도 숨어 있는 뜻을 정확히 파악해 다양한 의미를 끌어낼 줄 압니다. 남들에 비해 창의적인 결과를 자주, 원활하게 내놓습니다. 외부를 관찰할 때도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윤곽에 중 저을 둡니다. 기본적으로 시야가 넓고 입체적인 사람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 업무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희봉 님의 직관은 후천적인 훈련이 아니라 본능적이라 신뢰할 만합니다." 고 한 적이 있다. 이때 후천적인 훈련이나 결과가 아니라 본능적이라 신뢰할 만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호하다고 느꼈었는데, 최근 뇌과학에 대한 짧은 연구에 의하면 이해가 된다. 즉 이성보다 직관은 나에게 필요한 시기와 명령을 내려주는 훌륭한 멘토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아, 물론 내 경우에도 강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만의 남다른 직관력이 비약적인 사고로 나아가거나 과도해질 위험은 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한 법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면, 내가 감정이라고 무시해버렸던 그 직관은, 분명히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자, 이제 물위로 나갑시다. 살아야하지 않겠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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