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5일 뒤 나는 집에 있는 그대로 두번째 두근거림을 만났다. 이것은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데 내 배가 위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느껴졌다.
그 동안 내몸의 맥박의 움직임을 지켜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평소의 기억 따위는 없었다. 확실한 점은 내 호흡이 눈에 띄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언젠가 자신이 겪은 부정맥 증세를 나에게 말해준 교회 팀리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본인과 아들이 최근 겪고 있는 내 증세와 일부 비슷한 경험을 말씀해주시며, "괜찮을거야" 라고 하셨다.
그렇구나. 내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구나.
언니와의 전화를 끊기도 전에 핸드폰만 들고, 집근처 병원으로 내 몸은 향하고 있었다. 평소 외출할 때에도 뒤가 오픈된 신발은 신지 않는 나였는데, 그 때 두 발에는 슬리퍼가 신겨져 있었다. 다행히 찾아 낸 병원은 곧장 심혈관을 검사할 수 있을 만한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혈압과 피 검사를 했다.
맥박이 평소 1.8배로 뛰고 있다며, 심장쪽 문제이거나 갑상선의 문제일 수 있다고 의사선생님은 말했지만, 심전도검사후 심장쪽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며칠 뒤에 검사결과를 들으러 찾았지만, 씨익 웃으시면서 "어디가 아프신 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처음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럼 갑상선 수치는요?" 내과에서는 추가검사를 통해 갑상선의 문제나 다른 것도 아니고 했다. 다만 작년에도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신통치 않았던 것이 기억이 나서 다니던 병원에 가서 상담한 결과, 내 호르몬 수치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이어도 이상하지 않는 수치라고 정리하게 됐다.
(내과에서 피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와도 미달인 수치가 때로는 유의미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피로감이 깊을 때는 반드시 갑상선(외과) 전문의에게 재확인 하길 바란다. 검사 결과는 받은 병원에 수치만을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호르몬은 늘 몸 상태에 따라 변동이 있는 것이라 오후에 피로감이 지속되면 약을 주겠다고 해 일단 털럭털럭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두근거림, 근원적 요인 찾기
결론적으로 증세에 곧장 반응하는 실행력 덕분에 이후 나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다시 만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만난 두근거림과 자기 호흡을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가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고 직관이 말하고 있었다.
뭐야, 그럼 공황이라는 건가? 흔히 알고 있는 공황증세와는 달랐지만, 호흡이 가빠지고 맥박이 빨라진 것은 비슷하지 않나? 돌이켜보면 비행기를 타면(2년 전 나는 제주와 서울에 두집 살림으로 주말부부를 했었다) 약간 무섭기는 했고, 사람들 많은 곳에 가는 게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그냥 한가롭게 지내고 싶고 삶과 죽음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사고가 깊은 까닭이라 자위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도 원인에 집착하는 습관이 있어 '확인을 해야지!', 하고 신경정신과와 상담학 전문가를 찾았다. 하나는 정신과 병원인 것이고 하나는 심리학을 전문으로 연구, 실습하는 분들이니 두 군데 다 찾아야 확실한 검증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릴때부터 정신과학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때는 심리학이 부전공이다시피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내친김에 최근 연구분야도 인공지능이니 인간의 뇌를 분석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나의 경우 공황장애 요건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최소 20일 간의 계속되는 증세가 필요한데 나는 그것에 해당하지 않았다. 다만 무리한 작업을 하고 수술후 출근+(놀랍게도) 비건식을 3주 이상 지속한 상태였다. 우유나 달걀을 평소 좋아했지만 환경호르몬을 자제하겠다며, 하필 수술 이후 비건식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의사선생님은, "그런 무리한 일정이라면, 신경이 찢어졌겠네요. 이제 그만 쉬어달라고 몸이 사정을 한거니까 잘 받아주셔야 해요"라고만 했고, 일단 증세가 또 오면 복용할 비상약을 챙겨주셨다.
감정적인 문제라기 보다 실제 과로이니, 내 몸에 대해서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나에 대한 일을 타인으로부터 "잘 부탁드려요"라는 당부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상담의 경우에는 특별한 요소를 찾기 어려웠지만, 이런 증세를 호소할 어떤 장소와 낯선 곳과 사람만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일종의 탈출구일 수도 있어 보였다. 사실 집근처라 호기심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덕분에 여러가지 심리검사를 했는데, 다들 한번씩은 해보던 성격/성향 검사에 미네소타 주립대학의 상담검사지였다. OMR 카드에 답을 적고 있노라면, 과연 질문의 정확성을 따져보게 되는데 그냥 직관적으로 해야 한다.
6년 전 단체로 검사한 결과와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당시에는 정해신 박사님이 운영하는 '마인드 프리즘'이라는 곳에서 내마음 보고서라는 책자가 결과물로 왔었던게 기억이 나서 다시 꺼내 보게 되었다. 다시 보니 익숙하지만 새롭고,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
내 경우 양다리(직장과 연구)로 인한 과부하 상태로, 드라마틱한 상담의 쟁점이 없었다. 그래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몇 번 더 찾아가려고 한다. 담당 선생님은 그냥 서로 대화를 하는 수준에서 다른 내담자와의 (울고, 격분하고) 그런 시간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이 됐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내가 주제가 되는 자리, 어쩌면 그 자체로 편안한 상담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정신분석학, 심리학,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심을 해소하는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기회가 될지도!(심리상담소 근처에는 교보문고와 알라딘, 꽃집이 있었다. 이런 곳에 들리기 위해서라도 나쁠 게 없었다.)
이후 논문이나 일로 지친 뇌를 좀 쉬게 하기 위해서 뇌과학과 심리학분야의 책을 좀더 찾아보았다. 프로이드 계열을 잇거나 이를 반대하는 주장이 담길 글들이었다(나는 후자에 손을 든다). 나의 이런식의 접근에 대해서는, "쉬면서도 이.런. 책을 보냐"는 동생의 반응을 보니 일반적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내게는 평소 내가 연구목적으로 보지 않는 분야의 책은 나에게 무한 쉼이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에너지원 같은 것이었다. 최소 5년 만에 이런 책들을 집중해서 보게 된 것이니 이 증세는 얼마나 축복인가!!! 터지기 직전인 나의 숨구멍을 좀 트이게 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책과 글을 좋아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내가 숨쉴 만한 충분한 독서를 하지 못했다. 물론 엄청난 국내외 문헌을 접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전공분야에 관한 것들이었고 제한된 날짜에 저널을 쓰기 위한 책들이었다. 나는 이제 스스로 나를 돌보는 주치의가 되기 시작했다.
*유사하게 빈맥과 심장두근거림, 식도경련 등 여러가지 몸의 신호는 약하거나 강하거나 정도를 달리하는 공황의 증세일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을 한두번은 경험한다고 한다. 정도가 천차만별이니 인식의 정도다 다를게 아닌가? 영양의 결핍일 수도 있고 쉼의 결핍일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지쳐서 일 수도 있다.
이 사건으로 선택과 집중에 몰입했다면, 이제는 "정신적인 소모를 줄이기 위한" 방법과 원인 분석이 주 관심사가 되었다.
왜냐면 우리 몸은 언제나 즐겁고 유익한 일에 매진할 때 더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정해진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그 기쁜 시간들을 집중해서 극대화시키려면, 적절히 쉬고 적절히 감정과 몸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Message: 몸이 제동을 거는 신호가 왔다면, 당신은 이제부터 휴식할 절대적인 '프리패스카드' 를 손에 쥔 것이다. 이 카드는 자신의 핑계마저 전혀 통하지 않을만큼 완전한 변명거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