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이 비행하다

7월의 토론토

뜬 눈으로 태평양을 건너다


서양인 남자의 전형적인 웃는 모습을 가진 그는, 좌석을 잘못 봤는지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렸다. 그의 체구로는 자리가 비좁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장시간 비행에 불편한 행동은 안하는 이웃이겠거니 하고 기대했는데! 나의 잠깐의 예측으로 인한 안도감은 금세 사라졌다. 제주행이든 국제선이든 비행기 탑승 직후 잘못 착석한 여행객들을 매 번 만나는 것을 보니 비행기에서 제자리를 앉기란 세상에서 몇 번째로 혼돈하기 쉬운 일인 것이 분명하다. 결국 중국인 중년 커플과 비행 메이트가 돼 토론토까지 오게 됐다.

그녀의 이어폰 밖으로는 90년대 홍콩 영화에서 봤던 멜로디와 알 수 없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승무원에게 부탁을 해봤으나 다시 커진 음악소리는 정말 대단했다. 급기야 나는 그녀가 화장실에 간 새 톱니바퀴 타입의 볼륨을 몰래 줄여보기도 했지만, 무용지사였다.

심지어 그녀는 내 팔의 피부와 닿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중간중간 잠에 취할 때는 남편이 아닌 내쪽으로 몸을 기대기까지 했다. "왜 굳이 남편분이 옆에 있는데 나에게 이러시는 겁니까! 오 마이 갓!"

@ 알래스카를 지나 로키 상공

이렇게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8시간이 넘어가면서 토론토행 이코노미를 탄 것을 매우 후회했지만 결국 여행 마지막에는 그녀와는 수화물을 찾다 재회해 반가워하는 사이가 됐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던 동생은 '대박!'이라며 역시 언니는 mbti E구나! 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져서 같은 감정을 공유해서일까. 하늘위에서 만난 불편한 이웃에 대해서 순간 너그러워져버렸다. 도착 서너 시간을 남고 드디어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녀는 7살 때부터 캐나다에 살았고, 홍콩에 부모님을 만나러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나에게 공부하러 가는 길이냐고 물어봐서, (20여 전 전에는 그랬죠^^) 아니라고 답했다. 또한 자신은 토론토 다운타운에 산다며 물어오길래, 동생이 온타리호 호수가 가까운 곳에 산다며 말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그녀는 중간중간 자기 이야기를 해주며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결국 그녀가 6 자매인 것을 알게 됐다. 잠깐의 시간에 금방까지도 내게 불편했던 사람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나는 곧 그녀의 행운을 빌게 되었다.


그 때도 마찬가지


20여 년 전 캐나다를 처음 방문한 때가 생각났다. 당시 비행기의 오른쪽 열 비상구 자리에 앉아 교포인 중년 여자분과 이야기를 하며 날밤을 새서 캘거리에 도착했다. 나도 언젠가 내 옆에 나보다 꽤 어려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게 될까? 당시는 교포분들이나 아메리카 대륙이나 유럽에 이민을 가는 분들이 신기하고 멋져보였다. 아무래도 한국 땅에 제한되게 사는 것보다는 더 넓은 곳을 향해 용기를 낸 분들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와인을 먹어도 잠에 못 드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비교적 무난한 비행이었다.

가 앉은 좌석은 대한항공 비행기 앞쪽이었는데, 내 생각과 달리 인천공항을 경유지로 한 동남아쪽 승객들이 먼저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꽤 오래 전에 예약한 나는 앞쪽 좌석을 정하게 됐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됐나보다. 아무튼 내국인들이 많은 뒷쪽과는 달리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다보니 정신없이 소란스러웠던 분위기였다.

장시간 타이트한 스커트에 구두를 신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영어로 요구하는 손님들을 몇 번이고 응대하는 스튜어디스분들을 보면서, 극한 직업은 하늘 위에도 있구나 싶다.


두 번의 식사와 중간에 간식이 제공됐다. 첫 식사를 대강했음에도 마지막 식사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 쿨하게 "고맙지만 사양"하려 했으나, 갑지가 배가 고파졌다. 승무원이 치킨라이스와 김치라이스를 권할 때 치킨 라이스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속으로 외쳤다."픽 김치라이스!"....예상만큼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김치 볶음 밥이었다. 언젠가 먹어봤을 것 같은데도 놀라운 맛은 알 수 없는 허기때문일까 다시 기내식이 맛있어진 까닭일까 싶었지만, 어쨌든 맛이 좋았다.

@ 대한항공에서는 꼭 김치 라이스를!

성수기 토론토 비행에 대해서


티켓을 꽤 오래 전에 끊어뒀지만, 실상 여름 극성수기 시즌인 것을 몰랐다. 올해의 경우 8.4일 부터는 평소대비 1.5배의 금액을 지불해야 비지니스 이상의 좌석을 구할 수 있다. 실제 돌아오는 비행편을 알아보니 760 CD 달러 이상의 금액이었다. 물론 편도이다. 따라서 미리 예약을 하더라도 꼭 성수기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겠다. 나의 성격을 잘 아는 동생은 비행기에서 잠만 자지말고, 제공되는 음식과 와인을 즐겨보라며 당부했다.

비지니스 스위트 좌석은 완전히 눕혀지는 좌석으로 편히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고, 제공되는 주류가 꽤 다양했다.

@제법 풍성한 대한항공 기내식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몇 번이고 울컥했던, 귀국날이다. 다 필요없다 사실....... 토론토에 두고온 가족 때문에 내 얼굴은 잠금장치 없이 흐르는 수돗물처럼 결국에 눈물 바다가 됐다..서러웠다. 비행기에 타고나서 조카가 남긴 그림 메시지를 발견했다. 면세점 초입에서 토론토 시내와 호수를 담은 좌석 기념품을 사지는 않고 사진을 찍어왔는데, 놀랍게도 조카의 메시지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CN타워, 갈매기, 요트, 거위, 해변,,,,


"토론토! 너는 왜!!!! 아니 그냥 다시 볼 때까지 동생과 그 가족을 잘 부탁해!"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발견한 조카의 글과 그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