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이 끝날 무렵, 과부하 증세가 있은 이후로 쉬어가기 위한 그림을 그리게 됐다. 그림을 그린 다고 하니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줄 아시는 분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림에서 나타나지만 뭐 특별할 게 없이 가까운 동네 알파문구에 가서 물감 열 개 붓 하나를 샀고, 조카가 선물해 준 캔버스에 일상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전부이다.
어릴 적 그림에 소질있단 소리 좀 들었지만, 결국 어린 꼬마의 그 수준의 실력이다.
그런데도
종이에 일상을 그려 올리는 일은, 글로 감정이나 생각을복기해내는 일보다내 마음을 날 것으로 대면하는 일인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며 브런치를 시작할 무렵, "그림 그리는 닥터희봉"이 나의 필명으로 정했다.
치열한 글쓰기와 구분해 그림을 그리면서 편안한 글을 쓰고 싶었다. 지금도 브런치에는 그림일기 수준의 그림과 글을 올리곤 한다.
당시엔 나의 모든 에너지를 논문에 들여 부어 배수진을 친 상태라서, 내 몸은 항상, "논리적인 "글쓰기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어떤 방해물도 용납할 수가 없었던 내 몸은 회사업무, 연구,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피로 등을 아무렇잖게무찌르는 무적함대와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진짜 심장이 두근거려 놀이로 시작한 미술시간을 갖게 된 셈이다.
그간 살면서 이시간만큼 긴장감이나 그 어떤 비장함이 없는 때가 있었을까? 나는 경쟁사회에 뛰어들면서도 때때로 어릴 적 학교의 한가로운 미술시간을 떠올리곤 했다.
그때야말로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칭찬을 받으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데, 바로 쉬운 그림과 부담 없는 실력발휘, 내면의 표현, 자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좌표는 바로 그곳이었다.
마지막 미술 시간 이후로 이십 년은 더 흘러서야 그림그릴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 나서도, 올 해는 그림 한 장을 못 그렸던 것 같다. 작년 겨울에 캐나다에서 동생과 조카의 방문으로
제주 여행을 갔다 온 뒤, 조카의 모습을 배경 삼아 그린 이후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살만했던 것일까? 과부하 증세가 생길 만큼 비장한 일은 없어서이기도 하다.
2023년 겨울의 나, 이제 논문도 발표도 강의도 나를 그렇게 긴장시키지는 않는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및 연구관님들을 앞에 두고서도 졸리는 기분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이 정도면 이제는 부교감신경이 나의 메인 신경세포가 된 게 아닐까? 어쩌면 스스로의 한계치를 제법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잘됐다.
@2023년 겨울 숲속마을201
몇 해 전, 도심을 뛰쳐나와 내가 둥지를 튼 곳은, 그린벨트로 묶인 숲길을 머리맡에 둔 아파트 단지였다. 빌라단지와 작은 천(川), 숲을 품은 단지의 모습이 우리 부부가 잠시 머물던 제주에 있던 아라동 아파트처럼 여겨진 터에 이곳으로 곧장 이사를 단행하게 됐다.
어릴 때도 젊을 때도 난 여전히 새로운 곳에 가는 것,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긴장감이 아닌 평안함이 주는 어색함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지 만 3년하고도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브런치 카페와 이탈리안, 수제 케이크를 주문하는 상점들이 있는 언덕이 이어져있는 이곳을 좋아하면서도, 아이들이나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눈에 보이면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돈된 인공미가 넘치던 대단지가 지루했던
내 몸은 이곳의 모습에도 한동안 낯설어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2023년 12월, 눈이 제법 자주 오는 겨울이다.
이 마을엔 아이들도 어른들도 눈썰매를 타고, 더러는 황새와 두루미, 너구리 가족이 등장한다. 이 곳에서 너구리를 처음 보았는데 라쿤을 기대했지만 조금 험악하게 생긴 인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