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은 네 살, 마흔네 살
아주 아기였을 때를 떠올려 보면 두 가지 장면이 동시에 떠오른다. 연년생인 여동생의 돌잔치를 하던 날, 고모가 주신 분홍 리본 머리핀을 들여다보던 기억. 가족과 친척들이 잔치 기분에 둘러싸여 흥겹던 분위기와 TV에서 흘러나오던 서양 만화영화도 생각난다. 당시 사진을 보면 동생과 내가 나란히 분홍 핀을 꽂고 앉아 돌상에서 찍은 모습인데, 이 사진을 보고 나중에 혼자 상상한 건지 진짜 기억인지는 좀 애매하지만 어쨌든 그런 풍경이 잔상으로 남아 있다.
또 하나의 기억은 동생만 예뻐하는 엄마를 보다가 등 돌려 누워 눈물을 찔끔 흘렸던 장면이다. 동생은 막내니까, 또 나보다 더 어린 갓난아기니까 엄마는 어르고 달래고 예쁘다고 했겠지만, 어린 나는 난생처음으로 뭔가 서러운 마음을 느끼고 훌쩍훌쩍 울었던 것 같다. 그것도 엄마가 못 보게 등을 돌려 누워서. 이윽고 눈치챈 엄마가 왜 우냐고 여러 번 물으며 달래 주었던 것도 기억난다.
아이에게 엄마는 우주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다. 형제자매는 부모의 사랑을 서로 얻고자 다투며 자라는 경우가 많다. 자라면서 연년생 여동생과는 무척 많이 싸웠는데, 지금은 사이가 좋지만 유치원 때부터 사춘기 시절은 자주 다퉜다. 한 번은 엄마가 우리를 목욕시키고 있었는데, 내 안의 악마가 눈을 뜬 순간이 있었다. 동생을 씻길 물을 담은 대야에 엄마 몰래 뜨거운 물을 탄 것이다. 대야의 물이 동생의 등줄기에 끼얹어진 순간 비명이 욕실을 채웠고, 엄마한테 호되게 혼이 났다. 회초리도 맞았던 걸로 기억한다. 맞은 것도 슬펐지만, 한편으로 그 일은 내 안에 오랫동안 죄책감으로 남았다.
그렇게나 원했던 엄마의 사랑이었지만 늘 그건 동생이 독차지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살갑고 활달한 성격인 동생은 엄마와 사이가 좋았고, 별로 그렇지 못한 내가 동생을 흘겨보다가 싸우기라도 하면 엄마는 나를 많이 나무랐다. 세상에 내가 없으면 너희 둘 뿐이잖아, 네가 언니잖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지금 육아 TV 프로그램 사회자와 전문가들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지 모르겠으나, 당시에 회초리를 때리는 부모님들이 종종 있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회초리를 맞고 엉엉 울면서 방에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 참 외로웠다. 그때 혼자 책을 읽거나 혼자 노트에 끄적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의 상처가 갑자기 다 나아서 "짠, 우리 엄마를 순식간에 납득하고 이제는 사랑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라며 조금씩 상황을 헤아리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과, 누구에게나 당시의 최선이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엄마도 사람이니 힘들었을 수 있고 또 순간적이든 지속적이든 막내에게 더 애정이 갔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해 본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건 사실이니 잘 되라고 매를 들었던 순간도 분명 엄마에겐 있었을 것이다(의도가 그렇다고 그게 옳은 건 아니지만). '사랑의 매'를 옹호하려는 생각은 없다. 나는 요즘도 가끔 ‘뼈 때리는’ 농담으로 엄마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일부러 꺼내며 나만의 작은 복수를 실행하기도 한다(또 내 안의 악마가 눈을 뜨는 순간이다, 그렇다. 난 아주 착한 딸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 그런 장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동안 이혼한 아빠와 살며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다. 나를 만나러 학교 앞에 찾아온 엄마와 반갑게 얼싸안았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오랜 시간 내가 태평한 마흔네 살이 되는 동안,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희생하고 사랑을 주어온 엄마의 모습이 훨씬 더 많다.
소위 ‘과년한’ 나이에도 엄마와 살고 있는 나는 요즘 그때의 진정한 한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동생은 10년도 전에 결혼하고 이제는 매일 내가 엄마 옆에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40년이 흘러 마흔네 살이 되었는데 아직도 엄마는 나에게 하늘에 빛나는 별이다. 깜깜한 밤에 헤매고 있을 때 나를 따라오라고 말 걸어주는 목소리. 남들은 다 네 살 만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엄마 사랑을 탐하며 네 살 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한심한 것 같기도 하다.
쓰고 보니 엄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요즘은 가끔이지만 그때의 엄마는 어떤 슬픈 심정이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 시절 혼자 아이 둘 키우며 돈도 벌어야 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 조금 꼬질꼬질해 보이길래 장난으로 “못난이 인형을 닮았다”라고 놀린 적이 있었다. 농담을 듣고 나랑 같이 깔깔대며 웃던 엄마가 “이제는 늙어버렸어”라고 말했던가, 순간 울컥 울상이 되며 울먹이다 도로 또 웃었다. 나는 아차 싶었지만 특별한 말을 건네지 못했다. 엄마는 이제는 나이 든 노인이 된 자신이 서글픈 것 같았다.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내 품에서 엉엉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이제 언젠가는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 왜 우냐고 어르고 달래어 보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