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결혼반지
얼마 전 문득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아빠를 소개해 준 사람이 원수 같겠네?”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킬킬대고 웃었다. 부모님의 이혼은 나에게 30대까지는 큰 상처이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와 같은 사람의, 같은 여자의 이야기로도 내게 다가왔다. 나 역시도 사랑에 실패해 본 적이 있으니까. 이를 테면 우리가 겪어온 지난한 이야기들은 한 사랑의 잔해가 아닐까.
‘잔해’라는 내 워딩과는 달리 엄마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너희들을 얻었으니 되었어”라고. 엄마는 내가 마흔 살쯤 되었을 때 자신이 즐겨 끼던 다이아몬드 팔찌를 주었다. 이제는 조금 세팅 디자인이 촌스러워진, 그리 크지 않은 스톤 하나가 새겨진 팔찌. 아빠와 결혼할 때 마련했던 결혼반지의 다이아몬드 스톤을 들어내 다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종종 그 팔찌를 착용하는 걸 보아왔지만 그게 결혼반지에서 왔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어떤 잔해는 새로운 사랑 위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엄마가 준 팔찌를 물려받아 즐겨 끼는 나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스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지나가버린 사랑이지만, 그 결실로 태어난 소중한 다이아몬드 같은 내가 여기 있다고. 살다 보면 자신감이나 자기 확신이 약해지는 날도 있지만, 몸에 지닌 엄마의 사랑에 힘입어 나를 사랑하자고 마음먹는다.
엄마의 사랑을 닮은 또 다른 사물이 있다면 집에 걸려 있는 고 김점선 화가의 판화다. “닭”이라는 작품으로 꽤나 유쾌하고 용맹하게 생긴 커다란 닭이 성큼성큼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다. 뾰족한 발톱은 억척같고, 얼마나 빨리 달리는 건지 주변의 들풀들은 바람을 맞은 듯 눕고 있다. 엄마는 그 모습이 열심히 돈 벌고 아이들 키우는 자기 자신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집에서 쉬다가 이 판화 속 닭과 눈이 마주치는 날에는 그런 엄마에 대해 또다시 떠올려본다. 힘들어도 웃는 엄마, 유쾌하고 낙천적인 엄마, 그래 우리 엄마를 닮았다고.
얼마 전에 엄마를 주제로 시를 써서 신춘문예에 투고한 적이 있었다. 똥꿈을 꿨지만 낙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가 퍽 맘에 들었는데, 엄마가 매번 주변 친구 분들에게서 받아 오는 화분들을 소재로 썼다. 그 화분들은 하나 같이 수형이 어설프고 못생긴 것으로 보아 선물로 받았다기보다는 처치 곤란인 것들을 처분당한 수준이라고 나는 생각했는데, 엄마는 그 화분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받아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식물들을 “파양 화분”이라고 명명했다. 길고양이들의 다양한 무늬처럼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이라고 시에 쓰고, 혼자 아이 키우는 사람들을 애처로워하는 엄마의 성격에 대해서도 연결 지어 썼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화분들이 가지런한 수수한 베란다를 엄마의 사랑의 뜰로 표현해 봤다. 새해 1월 1일 자 신문에 시 부문 당선자로 대서특필되는 행운은 없었지만, 그 시를 쓰고 나니 엄마한테 그만 화분을 받아오라고 잔소리를 하던 내가 조금 누그러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은은한 파란색 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메리칸 블루가 아닌 새빨간 게발선인장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도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애틋해지는 마법이 있었다.
엄마에게 나의 사랑은 어떤 사물과 함께 다가올까. 엄마는 밖에서 누군가에게 예쁜 디저트를 받으면 꼭 나에게 가져다주는데,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한 무언가를 건네는데 인색했던 것 같다. 한두 번 여름휴가를 내어 엄마와 호캉스를 예약해 모셔간 정도다. 그나마 작년에는 퇴근길에 지하철역 꽃집에서 산 만 원짜리 꽃다발을 종종 식탁 화병에 꽂아 두었다. 각자 일하느라 바쁘고 힘들지만 한번쯤은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었다. 올해는 비싼 건 아니지만 등이 따뜻한 겨울 외투를 선물해 드렸다. 추운 날 종종 대며 아침 출근길에 나설 엄마가 따스하길 기도하며. 일상의 곳곳에서, 내가 엄마의 사랑을 느끼는 만큼 엄마도 나의 온기를 자주 느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