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하게, 서로를 지킨다는 것
“자식이 있으면 참아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직장에서 매일 지지고 볶는 내 온갖 하소연과 고민을 듣던 엄마가 했던 말이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상당히 뇌리를 때리는 말이었다. 엄마가 나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왔는지 나는 다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 땀 한 땀 헤아려 보게 되는 말이었달까. 나는 나대로 엄마를 참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지금도 내가 돌림노래처럼 엄마에게 읊으며 성토를 하는 사건이 있다. 엄마가 내 고등학교 도시락 반찬통에 세 칸 전부 똑같은 김치를 넣어준 일이다. 평소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은 수수한 편이었다. 가끔 조금 살이 적은 생선이 등장했고 보통은 깻잎이나 김치, 마늘종, 달걀 같은 게 있었던가, 딱히 불고기나 떡갈비처럼 짝꿍에게 자랑하며 “너도 먹어봐!” 권할 만한 반찬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까진 불만이 없었다. 90년대였던 당시 학교에서 어떤 과목 선생님은 “사이다, 바나나가 귀해서 한 입 먹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으니 말이다. 우리나라가 잘 먹고사는 일이 당연해진 게 얼마 되지 않은 것을 배웠으니 딱히 반찬 투정을 심하게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반찬통 세 칸에 모두 똑같은 김치는 좀 너무하다 싶었다. 등굣길에 나서기 전 알 수 없는 서늘한 예감에 도시락 통을 미리 열어보았더니 다 똑같은 김치 파티였다. 나는 그냥 한숨 한번 쉬고 도시락을 안 들고 집을 나섰던 것 같다. 학교 매점에서 그냥 빵 같은 걸 사 먹었다. 엄마한테 세게 항의하진 않았지만,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엄마한테 그 얘길 사골처럼 우려 꺼내며 놀림감으로 활용하고 있다.
당시에 친구들 중 자매가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경우, 어머님들이 실수로 큰 애 도시락에는 밥만 두 통, 작은 애 도시락에는 반찬만 두 통 들려서 보내는 웃지 못할 경우가 있었는데, 우리 엄마는 아마도 반찬통 한 칸에 김치 넣고서 또 “아- 달리 반찬이 없네 또 김치 넣어볼까” 이런 자각도 없이 정신없이 김치를 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학교 보내고 또 부리나케 출근을 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마흔이 넘은 나는 이제야 엄마가 시간 내어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종종 본다. 엄마가 직장인으로 일해 바빴던 시절엔 친척 분들이나 엄마 친구 분들이 주신 김치가 냉장고에 자주 있었다. “이건 누가 주신 거야? 이건 누구네 집 김치야?” 물어보며 먹던 기억이 난다. 그런 십시일반으로 자라고 보니 엄마가 휴일이나 명절날 느긋하게 김치를 담그거나 하면 그 풍경이 따스한 안도로 다가온다. 그건 이제야 우리에게 찾아온 평온이라는 느낌인 것 같다.
물론 사는 건 언제든 팍팍하다. 그리고 엄마가 가사 노동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달갑진 않다. 명절날 전이라도 부쳐주고 싶어 하시는 엄마를 위해 나는 전을 그냥 반찬 집에서 사 와 버리기도 한다. 내가 직접 해드리면 좋으련만 나는 요리에 영 흥미가 없으니까. 나의 사랑의 징표는 엄마에게 매일 멋진 요리를 해드리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다 까놓은 파나 명절 전 같은 걸 장 보아 드리는 것이다. 그래도 역시 새해에 하고 싶은 일은, 엄마에게 음식을 더 자주 만들어 드리는 거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후배들이 나에게 “무슨 낙, 원동력으로 일하냐”라고 물어올 때가 있었다. 야근이 생겨도 크게 불평 없이 일하는 모습이 그런 질문을 떠오르게 했나 보다. 한 번은 엄마를 생각한다고 대답을 해줬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일하면서 우리를 키웠겠지”라고 생각한다고. 엄마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참았을 것들과 그렇게 지나간 여러 날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제는 점차 엄마가 나를 지키는 게 아닌 내가 엄마를 지킬 수 있어야 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하기 싫은 일에도 덤벼 본다.
나는 요즘 ‘지킨다’는 말을 좋아한다. 가족, 연인, 아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허망하게 느끼는 사람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직장에서든 어디서든 누군가와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상대의 뒤에 그가 지키고 싶은 사람이나 사물,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고 맘먹게 됐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참아야 될 것도 많지만, 헤아리게 되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