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는 어제 쓰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잠들어 버려 나머지를 이어 쓰는 것이다.
특별한 날을 싫어하면서도 그냥 지나가면 섭섭한 것 같아서, 나만의 신년 의식으로 무얼 해야 하지 하고 있었다. 매년 새해 계획을 세우는 나만의 작은 세리머니를 해왔었는데 올해는 도통 뭘 해야 할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장래희망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올해 목표라고 생각해볼 만한 지향점을 찾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시작은 지난주 도서관에서 빌려온 『아무튼 서재』를 읽으면서부터이다.
책에서 다루는 원목에 대한 이야기, 좋은 책장과 책상, 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우리 집의 원목가구들이 생각났다. 신혼가구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망가지기 십상이니 망가져도 아깝지 않을 적당한 가격의 가구를 사는 게 좋다는 주변이들의 참견 어린 훈수를 무수히 많이 들었음에도, 경제력은 없으면서 보는 눈만 높았던 나는 적당한 가격의 가구를 나의 첫 공간에 차마 들일 수 없었다. 적당히 타협하고 양보하길 수차례 거쳐 그나마 현실적인 가격의 만듦새 좋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찾았고 그 브랜드에서 부엌 식탁, 식탁의자, 소파, 서랍장, 침대, 침대 보조 테이블을 주문하였다. 다른 살림들은 가격이 적당하여 신혼부부들이 주로 애용하는 브랜드에서 장만하기도 하였으나, 6년이 지난 지금도 애착이 가는 세간살이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고무나무로 만든 식탁과 서랍장, 침대이다.
좋은 가구를 만드는 법, 좋은 가구를 가지고 정성스레 애용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읽다 보니 유아 둘과 한 공간에서 지내느라 사방에 사인펜으로 낙서가 되어 있고, 아이들이 풀칠을 하고 테이프와 스티거 자국이 드러난 채로 방치되어 있는 우리 집 식탁이 생각났다. 당장이라도 식탁을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식탁이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 둘을 급히 재우고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식탁 위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죄다 치우고, 창고 한편에 처박혀있던 사포를 찾아내 와 식탁을 곱게 갈아내기 시작했다. 주변에 신문지를 깐다거나 하는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사포질을 시작하다니 참 대책이 없다. 다행히 부스러기가 많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눈에 보이지 않은 먼지들이 많이 떨어졌겠다 싶어 청소기를 돌리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어지러운 창고 속.
어지러운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닦고 청소기를 돌리고 오밤중에 난리가 났다. 내친김에 아이방에 널브러져 있는 교구들도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할 것은 다시 정리하고.
오래된 주상복합인 우리 집은 전형적인 아파트와는 구조가 달리 창고용 공간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곳곳의 창고마다 보관해 둔 짐들이 많은데, 문제는 창고를 잘 들여다보질 않으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창고 속에서 보관해 온 물건들이 창고 속에서 먼지와 함께 어떤 물건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문득, '아 우리 집은 내 능력 이상으로 너무 넓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한 밤중의 한바탕 소통이 지나가고 나에겐 깨달음이 남겨진 채로 잠들어 버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