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의 쓸쓸한 낭만, 커피 한 잔도 사치가 된 현실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들어와 나뭇결이 선명한 원목 탁자 위에 부서지는 오후였다.
예전 같으면 이런 날에는 조용한 카페의 한 구석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을 앞에 두고,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평화를 느꼈을 것이다.
커피의 쌉싸래한 향과 딸기 케이크의 달콤함은 하루의 고단함을 덮어주던, 소박하지만 확실한 위로였다. 그러나 이제 그 ‘소박한 위로’마저도 마음 놓고 누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예순보다 일흔이 더 가까운 나이의 노인이라고나 할까. 은퇴한 지 십 수년이 흘렀고, 이제는 고정 수입이라고 해봐야 매달 들어오는 적은 연금이 전부다.
젊었을 때는 몰랐다. 한 잔의 커피, 한 조각의 케이크가 이렇게 부담스러운 날이 올 줄은 말이다.
예전에는 월급날이든 아니든 ‘오늘은 내가 쏜다’며 웃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카페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린다. 커피 한 잔 7천 원, 케이크 한 조각 만 원. 단지 그 두 가지를 고르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할 줄은 몰랐다.
국가데이터처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초콜릿 가격은 전년 대비 16.3%나 뛰었다고 한다. 커피는 14.7%, 빵은 6.6%, 잼과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도 줄줄이 두 자릿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일상의 작은 사치로 여겨지던 디저트가 이제는 ‘사치품’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호텔에서는 연말 한정 케이크가 30만 원이 넘는다 하니, 그 소식이 어찌나 허무하던지. 그 반짝이는 진열장 속에서 달콤함을 뽐내는 케이크는 더 이상 행복의 상징이 아니었다. 내게는, 이제는 감히 손을 뻗을 수 없는 세상의 한 조각처럼 느껴졌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삶의 여백이었고, 마음의 쉼표였다.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를 잠시 위로하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은퇴한 지금, 그 여유는 사라졌다. 커피잔의 온기보다 먼저 계산서를 떠올리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고환율과 원자재값 상승, 인건비 부담 등 여러 이유로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뉴스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논리를 이해한들, 빈 지갑이 그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결국 그 고통은 노년의 몫이 된다.
지나온 세월 동안 열심히 살아왔건만, 나이 들수록 세상은 점점 비싸지고, 나의 하루는 점점 작아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커피 향을 그리워한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작은 표지이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던 그 시간,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누며 웃던 그 순간은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언젠가 다시,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고, 단지 그 향과 온기만으로도 하루가 충분히 따뜻했던 시절처럼. 그날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커피, 참 따뜻하군요. 그리고…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지금이,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