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보행이다.
"인생은 보행이다."
내가 젊은 날, 떠오르는 태양처럼 앞만 보고 걸을 때, 이 말은 단지 속도와 성취를 의미했다. 허벅지 근육이 화강암처럼 단단했던 시절, 보폭을 넓히는 일은 더 많은 삶의 영토를 정복하는 일과 동의어였다.
그러나 이제, 해가 기울어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황혼 앞에서, 나는 나의 걸음걸이가 오로지 내면의 풍경임을 고백한다.
아, 이 노쇠한 육신이여~!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회전하는데, 내 걸음은 슬로비디오처럼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굳게 닫혔던 왼발과 오른발의 측면 간격, 그 '보격'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한다. 등이 굽으면서 땅으로 주저앉는 듯한 이 자세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소뇌마저 중심을 놓친 노인의 처절한 고백이다.
발을 딛는 각도마저 팔(八)자걸음으로 벌어진다. 젊은 날의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모두 빠져나가, 발이 땅에서 멀어지기를 두려워하는 잔걸음의 낭인이 되었다. 보격은 양발 측면 사이의 길이이고, 보폭은 양발의 앞뒤 사이 길이다.
이 보행의 퇴행이 단순한 관절의 마모일까? 아니다. 전문가의 차가운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가. "보행 속도가 느린 사람은 치매 위험이 1.6배 높고..." 짧아진 보폭은 근육의 쇠퇴를 넘어, 세상을 향해 열려 있던 뇌의 빗장이 닫히고 있음을 알리는 서글픈 신호이다.
낙상이 두려워 보폭을 좁히는 순간, 그는 이미 세상을 향한 전진 의지를 포기하고, 가장 낭만적이었던 과거의 그와 결별하고 만 것이다. 낙상 위험 그룹? 그것은 곧 삶의 현장에서 은퇴를 준비하는 나약한 정신 상태의 표지이다.
하지만, 노년의 남은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노쇠함 속에서, 마지막 낭만을 찾고자 보폭을 넓히는 것은 이제 정복이 아니라 회복이다.
종아리와 허벅지 앞 근육을 다시 단련하여 발을 높이 올리고, 앞으로 내딛는 그 순간, 우리는 어쩌면 잊고 있던 청춘의 굽이진 오솔길,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걸었던 자갈밭의 소리, 혹은 가장 강렬했던 사색의 순간을 다시 걸을 꿈에 잠긴다.
보폭을 넓혀야 한다. 그것은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활자 크고, 행간 넓게 채우겠다는 의지이다.
보격을 줄이겠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번잡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중심(中心)'을 지키겠다는 고독한 약속이다. 팔자걸음을 모아들이는 것은, 세상의 흐트러짐에 동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정갈한 자세로 나아가겠다는 숭고한 다짐이 아닐까.
젊은 날, 우리는 속도를 내어 목적지에 도달했다. 이제 나는 속도를 내어 나 자신에게 도달해야 한다. 보행이 빠르고 자세가 올곧은 사람이 요실금도, 인지기능 저하도 적다는 그 단순한 사실 속에서 나는 경이로운 삶의 진리를 본다.
일주일에 120분, 3개월의 훈련이 단순히 걷는 능력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황혼의 낭만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한 노인의 최후의 사랑가(愛歌)임을 믿는다.
나는 다시 걷는다. 보폭은 넓고 보격은 좁게, 그리고 속도는 빠르게. 그 걸음이 나를 낙상과 치매의 불안으로부터 구원하고, 젊은 날 내가 꿈꾸었던 가장 아름다운 종착지로 인도할 것이다.
지는 해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 속으로, 나는 내 보폭을 믿고 힘차게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