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감자, 세월이 다듬어준 한 조각의 시간

by JayGee JIN


어느덧 내 손끝은 매끈한 것보다 울퉁불퉁한 것에 먼저 닿는다. 어린 시절, 나는 이 이상한 모양의 덩이뿌리를 ‘재수 없는 감자’라며 마당 한쪽으로 던져버리곤 했다. 돼지우리로 굴러 들어가면 “그래, 돼지나 먹어라” 중얼거리던 기억까지.

그때는 몰랐다. 그 투박한 덩이가 언젠가 내 삶에 조용히 돌아와, 가장 귀한 먹거리가 되리라는 사실을.


이제 그 덩이뿌리는 부엌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 깍두기의 재료로서 환대를 받는다. 누군가의 손이 정성스레 배추를 썰어내어 단지 속에 담아낼 때, 나는 그 옆에서 돼지감자의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긴다. 뿌리 위를 칼날이 지날 때마다, 마치 오래전 흙길을 걷듯 시간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천천히 더듬는다.


맛은 솔직히 밋밋하다. 심심할 정도다. 그러나 나이 듦은 사람을 묘하게도 변형시킨다. 젊었다면 코웃음 쳤을 ‘맛없는 뿌리식물’을 지금의 나는 돼지감자 깍두기가 있는 동안은 꼼꼼히 챙겨 먹는다.


당뇨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 낯설고 투박한 식물을 쓸쓸한 동반자처럼 받아들이게 한다.



과학도 어느새 내 편이 되었다. 돼지감자 속 이눌린(inulin)은 소화되지 않은 채 혈당이 천천히 오르도록 부드럽게 도와주는 식이섬유라고 한다.


연구에서는 식후 혈당을 낮추고, 포만호르몬의 흐름마저 조율한다고 하니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인체 내부의 세계를 다독여주는 듯하다. 심지어 동물 실험에서는 간의 지질 대사가 개선되고 장내 미생물들의 균형이 회복되며 혈당과 지질이 낮아졌다는 보고까지, 투박한 뿌리의 내면에 숨겨진 과학적 아름다움이 나를 설득했다.


나는 이제 돼지감자를 단순히 건강식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의 결이 닮은, 다정한 기억의 조각처럼 여긴다. 깨끗이 씻어 둔 뿌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만나 하루의 숨결을 머금은 깍두기로 변한다. 그리고 나는 그 소박한 맛을 천천히 씹어 삼킨다.


어릴 적 한낱 ‘재수 없는 덩이’라던 그것이 지금은 내 삶의 깊이를 확인하는 작은 의식(儀式)이 되었다.


나이 듦이란,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던 가치들을 발견하게 하는 기묘한 선물이다. 한때는 아무렇게나 던져버리던 돼지감자가 이제는 내 일상을 지탱하는 작고 단단한 상징이 된 것처럼.


언젠가 오래전 던져버린 그 덩이뿌리가, 지금 내 손끝에서 깍두기의 향으로 되살아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월이 선물한 가장 낭만적인 반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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