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후텁지근한 날 이만한 데가 어디 있나

1912년 시작되어 1972년 폐광된 광산, 광명동굴

by 맘달

장마꽃 능소화가 흐드러졌는데도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마른장마인 건지 아니면 장마가 지나간 건지 잘 모르겠다. 지난 휴일 광명동굴에 다녀온 뒤로도 며칠째 비는커녕 하늘은 가을날처럼 파랗고 날은 후텁지근하다.







생각만 해도 온몸이 시원해지는 광명동굴, 사진으로 훑어만 봐도 시원하다. 난 휴일에 갔던 그의 서늘한 바람이 몸에 와닿을 것만 같다. 그날 집을 나섰다가 다시 들어가 스카프와 겉옷을 챙겨 오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기온변화에 민감한 내 몸이 버티질 못했을 것이다. 동굴 밖은 30도를 육박하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하다'에서 '춥다'로 바뀔 정도였으니까.

입구부터 시원한 바람이
예뻐서 사진찍느라 난리난리

처음부터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칙칙하고 음침하고 어두울 거라는 동굴에 대한 편견을 깨기에 충분했다.


무등을 탄 아이는 하늘의 별을 딸 것처럼 높이 손을 쳐들었고 순간순간 달라지는 다채로운 빛의 향연에 신이 난 아이들이 팔짝팔짝 뛰었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었고. 순간, 나도 내 안의 어린아이가 살아나 사뿐사뿐 탄성을 지르며 춤추듯 걷고 있는 게 아닌가. 한술 더 떠서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지는 파사드쇼를 볼 때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물고기도 살고 식물도 산다 와인은 판다
황금패소망의 벽/풍요의 여신/황금나무
소망의 초신성超新星

초신성이란, 거대한 별이 폭발할 때 태양보다 수 억 배 밝아져 마치 새로운 별이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언젠가 소설을 읽다가 어학사전을 찾아 메모해 둔 단어를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다니. <초신성> 은 2016년 그전에 방문한 사람들이 소망을 적은 14,856개의 황금패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이디어가 참신하게 느껴졌다.

지하세계에서 광물을 나르던 나무광차

계단으로 내려간 동굴 안에서 해설사를 만났다. 궁금한 것을 물으니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광명동굴은 자연동굴이 아니라 금, 은, 구리, 아연 등의 광물을 채광하던 광산지구라고. 1912년 일제 강점기 채굴된 '가학광산동굴'의 광물은 전부 수탈되었고 6.25 전쟁 때는 동굴이 피난처였다고. 한국전쟁 후 1972년 폐광될 때까지 수도권 유일의 광산으로 전성기 때는 500명 이상의 근무했고 주로 텅스텐을 채굴했다고. 폐광이 되고도 2010년까지 새우젓 저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하니 동굴의 다양한 쓰임새에 놀랐다.

동굴에는 폭포도 있다

동굴에서 태어난 '굴댕이'는 얼마나 될까. 아직 살아있을까. 광부가 마시던 지하암반수의 맛은 어땠을까. 벽에다 낙서를 하며 마음을 달래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동굴 안에서 살았다는 구석기 원시인들이 아닌, 가까운 과거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같은 시대를 사는 소설 속 인물을 그려보듯.









밖으로 나오자 딴 세상이 펼쳐졌다. 급격한 온도차로 안경에 김이 서렸다. 순간 냉탕에서 온탕으로 나온 것 같았다. 방금 전 보고 나온 지하동굴세계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니 전체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가장 깊은 곳은 7 레벨(해발 -95M)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실제 광부였던 분이신가보다






안경에 서린 김이 가실 때까지 동굴입구에서 서성거리다가 마주친 평화의 소녀상. 광명시민의 성금으로 2015년 8월 15일 세워졌고 광명동굴 입장료 수입의 1%가 일본군위안부피해자를 돕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어디를 가나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숨어있다. 일제 강점기의 잔혹상은 뿌리깊이 박혀있어서 잊으래야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역사학자 신채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광명 평화의 소녀상









동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동굴 밖은 찜통. 동굴 안은 사시사철 섭씨 13도를 유지한다니 봄으로 거슬러 다녀온 것이다. 시간여행도 하고 계절여행도 한 셈이다. 후텁지근했던 휴일 오후를 시원하게 보냈고, 역사를 더듬는 뜻깊은 시간이었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하루분량의 걷기까지 했으니 입장료 만원이 아깝지 않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