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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서울국제정원박람회 1

by 맘달

작년부터 열린다는 소식은 접했었고 마침 때가 되어 열린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국제'가 붙었으니 규모가 어떨지, 얼마나 볼만할지 궁금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는 아니어도 가까운 곳에 살고, 한때 공원을 가로질러 출퇴근을 한 적도 있어서 보라매공원은 친근하다. 내게는 그저 그런 곳, 동네공원이었다. 그런데 오늘 간 동네공원은 평상복차림으로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가 어느 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껏 멋을 낸 모습이라고 하면 얼추 맞는 느낌이 들었다. 덩달아 나도 평소하고 다르게 대해야 할 것만 같아 묘한 설렘과 낯섦이 뒤범벅되었다.

안내판 이쁨

장미가 만발한 계절에서 단풍이 드는 가을까지 열린다니 박람회 기간이 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져갈 모습들도 기대된다. 자주 와야만 알게 될 모습들이다.

화분에 모여사는 꽃들
비행기는 이곳이 공군사관학교였다는 증거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인 '보라매'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보라매공원은 동작구에 속해있지만 관악구와 영등포구와 닿아있어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신림경전철이 생겨서 더 그렇기도 하다.

정원에 대하여 한마디씩

아름다운 정원에 창을 내고 글을 썼던 버지니아 울프, 정원을 가꾸며 작은 기쁨을 누렸다고 했던 헤르만 헤세...


나는 유명한 그들보다도 친정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동네 꽃집에서 내다 버린 죽은 화초들을 거두어들여 집에서 살려내시곤 하셨더랬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들어섰을 때 손바닥만 하던 아버지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난초향기가 번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냄새가 순간의 기억을 마음에 새겨주었다.

알리움 크리스토피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해 미안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선생님 따라 병아리 떼처럼 걷는 모습도 이쁘고 옹이종기 앉아있는 모습도 예쁘다. 한 아이가 지나가면서 둥근 꽃을 보고 비눗방울처럼 생겼다고 했다. 나는 그 곁을 지나면서 아이가 크면 시인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호숫가풍경

호숫가 오래 묵은 나무들과 그 주변에 사는 앵두나무도 보리수나무도 그대로다. 박람회라고 여기저기 분칠하고 단장했지만 여기는 평소 그대로다. 화려하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봤다. 동네공원이라서 낯익은 것들도 왠지 새삼스럽다.

앵두 맛있겠다
벌과 나비도 함께
참 예쁘다

변산반도에 놀러 간 친구가 거기서 찍어 보낸 데이지군락지가 떠올랐다. 나는 이곳 박람회 사진 몇 장을 답장으로 보내야겠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이렇게 좋다'라는 말은 빼고.

데이지꽃밭





은상을 받았다는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제목도 그랬다. 곰실할머니는 어떤 분일까. 아마 마음씨가 고운 분일 거야.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하고 나는 작품이 좋아서 사진만 냅다 찍어댔다.

곰실할머니댁 맑은 숲





돌멩이에 담긴 이야기들도 잔뜩

색이 진하고 꽃이 큰 것보다 작아서 쭈그리고 앉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 앙증맞은 꽃이 좋다. 그런 꽃은 줌인해야만 사진에 담긴다. 솔직히 꽃은 다 좋아서 비교급이나 최상급을 들이댈 수 없다. 자기만의 고유함을 지니고 있고 그 고유함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서.

소박함
옹기종기

박람회라고 새로 심긴 꽃들보다 강력한 것은 터줏대감 풀꽃들이다. 찔레꽃. '나 여기 있다'라고 외치듯 진한 향기로 나를 이끌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인적이 드문 곳에 '나 이러고 있다'라고 말하듯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래, 너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었구나, 하고 사진에 담아왔다.

찔레꽃향기가 바람 따라

오늘 사진에 담아 온 꽃들을 풀어놓는데 향기까지 담을 수 없는 것이 몹시 아쉽다. 먼 훗날 향기까지 담을 수 있는 장치가 발명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너무 나갔나, 나의 상상에 내가 웃고 만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발이 아픈지도 모르고 몰랐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날도 더웠는데 그랬다면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다. 오늘 밤도 머리가 닿자마자 잠에 빠져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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