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서촌에서 행촌까지
장마처럼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저녁, 산책하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해 지지난주 나들이 갔던 기억을 더듬는다. 사진만이 그날의 생생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날, 흐렸다. 행촌과 서촌이 따로라고 여겼는데 가깝게 연결되어 있음을 발로 확인한 날이었다. 세상의 모든 길은 땅으로든 바다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날. 내 생일이 한참 지났는데도 축하한다고, 가자미 미역국 든든하게 얻어먹고 그 사람하고 나란히 걸었다.
걷다가 차 한잔 주문해 놓고 책도 보고. 제목과 목차 위주로 훑어보는 정도이긴 했어도 나름 소득이 있었다. 올해는 소설위주로 읽어보겠다,라는 다짐이 시들해질 즈음이라. 책냄새에 취하다 보니 활자에 대한 욕망이 샘솟았다. 양탄자배송으로 사들인 책부터 차근차근 읽어야겠다, 쏘댕기기 좋은 계절이라 어쩔 수 없더라도 짬을 내고 틈을 봐서 읽어야겠다, 이런 마음을 내고 있었다.
걷고 또 걷고
보고 또 보고
찍고, 계속 찍고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여러 번 피정을 왔던 곳인데,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신앙에 열정이 있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는 많이 힘들었고 힘든만큼 간절했더랬다.
걷다보니 도서관도 있고 책방도 있었다.
사직터널 지날 때마다 저기 있는 게 뭐지 했던 건물, 사회과학도서관. 그야말로 '사회과학'스럽다. 마당에 핀 등나무 꽃이 바람 타고 향기를 뿜어 삭막함을 덜어줬다.
고개 들어 멀리 보고
고개 숙여 발끝 보고
크게 보면 거대한 산
작게 보면 나무나무
크게도 보고 작게도 볼 줄 알아야
크게도 생각하고 작게도 생각할 줄 알아야
그러고 싶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거니까
모과나무 꽃은 높이 달려서 가까이 찍을 수가 없었는데 마침, 도로보다 아래쪽에 심겨 있어서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꽃이 핀 것도 있고 진 것도 있고, 열매가 맺힌 것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무 한그루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게 놀랍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닫혀있었다. 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명동에 가면 이회영 집터가 있는데 여기 기념관은 남산예장공원에 있다가 곤돌라에 밀려 임시이전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24-01-17 동아일보 기사 참고
글을 쓰는 동안 서울서남권에 호우주의보 발령했다는 안전 안내 문자가 도착해 있다. 뭐든 적당한 게 좋은데, 비도 적당하게 내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