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에서 서순라길 지나 창경궁까지
매년 이맘때 나의 영명축일을 기억해 주는 친구하고 약속한 날이 오늘이었다. 밥 한 끼 같이 먹기로 한 장소가 광화문이었다.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볕이 좋으니 소화도 시킬 겸 걷기로 했는데...
아, 오늘이 제주 4.3이었지, 축일파티만 생각하느라 깜빡했었네. 친구 입에서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청계광장 추념식 자리에 흐드러진 동백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소설가 한강이 한 말은 기억하는데 막상 그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읽지 못하고 있는 한 사람, 나! 영영 읽지 못할 것만 같은 소설이다.
어제 하고는 딴판, 오늘 날씨 맑고 푸르렀다.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이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여러분이 애써 이루신 상업기술의 결과라고 생각하시겠습니다만 여기에는 숨은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전태일 기념관 외벽에 쓰인 글은 1969년 근로감독관에게 남긴 편지 형태의 진정서 내용이다. 법은 있었으나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 멀지 않은 과거, 1970년대의 일이었다는 게....
법은 고치면 되지만 법을 무능하게, 무력하게 만드는 파시스트 엘리트가 재생산되는 한 쉽게 달라지지는 않을 세상, 우리는 망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계천 따라 걸었다. 종로 4가쯤에서 도로 위로 올라왔다.
하늘이 점점 맑아져서 오늘이 24 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인 청명인 듯. 오늘 아니고, 청명은 내일이다.
종묘의 파릇파릇 새순이 올라오는 나무들을 수평에서 바라볼 수 있는 카페에서 풍경소리 들으며 따끈한 차 한잔....
여기는 딴 세상. 절간 같다.
일제가 종묘와 창경궁을 갈라놓은 율곡로 위로 90년 만에 연결통로를 만들었다지만 제한적으로 운영된다. 다시 도로로 내려가 횡단보도를 건너 창경궁 홍화문으로 매표하고 들어가야 한다. 이럴 거면 왜 만들어놓았는지....
연결통로의 산책로에 심긴 꽃들로 위안 삼고
내친김에 내일은 탄핵심판 선고일이라 궁궐도 문을 닫는다고 하고 모레는 비도 온다고 하니 이때가 절정이지 싶었다. 잠깐이라도 들어가 보고 헤어지기로 했다.
일어탁수一魚濁水
한 사람 때문에 여럿이 고생이다, 이런 낭비가 어디 있나!
들어오길 잘했지, 정말 잘했다!!!
상서로운 일을 상징하는 나무를 보았으니 좋은 소식이 들려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독하고 지루한 겨울을 보냈으니 이제는 좀 벗어날 때도 되었다.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는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보편적 가치가 드러나고 지켜질 것이다. 마음 졸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 봄을 만끽하며 룰루랄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내일은 淸明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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