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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골목길, 나 혼자 걷노라면

숲이 아니어도 좋은 주택가 골목길 산책

by 맘달

차를 타지 않고 걸으면 나한테는 다, 산책이다. 언제든 어디든 목적 없이 하릴없이 걸으면 그게 산책이지 뭐 대수랴. 일단, 차에서 내리기만 하면 된다. 가던 목적지에서 서너 정거장 먼저 내려서 큰길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거기서부터 '나 혼자 걷노라면'이 시작된다. 나의 산책은 늘 이런 식이고 자주 그러다 보니 습관으로 굳어졌다. 주택가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면 차보다 사람이 많고, 좁지만 여기저기로 통하는 길이 있어서 그 가능성에 길이 많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대충 방향만 정해지면 지도를 보지 않고 걷는다. 골목마다 자기만의 표정을 담고 있어서 그 표정을 폰에 담아 가며 구경하다, 간혹 막힌 길에 들어서더라도 돌아서면 되니까 마음대로 걸을 수 있어서, 마음 가는 대로 걷는다.




봄이면 볼품없이 방치된 화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골목을 환하고 정겹게 만드는 것은 꽃과 나무들이다.



# 어느 집 앞에서

제 집 앞을 이렇게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꽃보다 더 아름다울 것 같다. 그이의 얼굴이 아니라 미소, 손놀림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지 모를 아름다운 미소와 손놀림으로 위로받고 마음마저 환해지는 것은 기적이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

#주택가 미용실 앞에서

꽃집이 아니라 미용실인데 이 집에서 펌을 하면 머리에서 꽃향기가 날 것만 같다.

간판 없는 미용실 앞에서

# 골목 안 숨은 공간

다 낡은 것들인데 화분에 핀 꽃만 새것이네. 꽃이 조화처럼 보일 정도로 낯선 것은 꽃의 화려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잦아드는 오후의 햇살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붉은 벽돌 붉은 오토바이 꽃도 붉어

# 웬 물난리

하수구 물이 넘치는데... 왜 그러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으니 수고하시네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지나간다. 소심한 나. 내 친구 같았으면 분명히 수고가 많으시네요,라고 말을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나도 그래볼걸.

물이 콸콸

# 벽돌탑

아무렇게나 쌓은 게 아닌가 봐. 높은데 끄떡없는 걸 보면. 젠가가 떠오른다. 직육면체 나무블록을 3개씩 엇갈려 쌓아 두고 돌아가면서 블록 하나씩 빼내는 게임....

벽돌 쌓기처럼 일상도 차곡차곡

#초미니 텃밭

100% 재활용 텃밭이다. 널따란 고무대야에 흙을 담고 건조대에서 분해한 쇠막대기를 지지대로 삼고 빨간 비닐끈으로 묶은, 야무지고 알찬 골목 텃밭. 여기 주인이 어떤 사람일까, 야무지고 당찬 사람일까?

누구의 작품일까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 빛나는 존재

철쭉의 강렬함이 강력한 콘크리트 건물과 단단한 트럭 사이에서 맞짱을 뜨고 있다. 색으로나 부드러움으로는, 이미 판가름 난 것 같아 보였다.

철쭉의 쨍한 빛깔은 감당이 안돼
화분에 사는 작약도 피기 직전

# 대파꽃이 피려고 준비 중

일 년 내내 꼭 필요한 양념, 대파. 대파는 서늘한 날씨를 좋아한다고, 잘만 관리하면 일 년 내내 키워 먹을 수 있다는데, 확장형 아파트 한편에 대파를 키워먹던 사람도 있던데,라는 생각을 하며 찰칵. 대파, 너 오늘 참 어여쁜 모델이야!

꽃을 피우기 위해 대파는

골목을 환하고 정겹고, 볼 것 많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꽃과 나무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보다 앞서 꽃과 나무를 키워내는 수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 나는 날이었다.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어줄 텐데, 굳이 그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혼자 걷노라면 쓰고 싶어진다. 걷고, 보고, 쓰는 일. 이것이 나를 만드는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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