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by 맘달

며칠 전 내가 집안에 쌓인 쓰레기를 고 집을 섰는데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한 번 서고 7층으로 내려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깡마른 남자어르신 한분만 있었다. '아, 그럼 저번에 봤던 젊은 엄마는 누구지? 안색이 어두워 말도 못 붙였더랬는데, 분명 8층은 2호만 입주했고 그렇다면 이분 802호에 산다는 건데?' 순간 의아했고 곧 혼란스러웠다.


"몇 호 사세요? 혹시, 이쪽이요?"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2호 쪽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네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르신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죄송하다, 정말 죄송하다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실은, 제가 몇 번이고, 내려가서 말하려고 했는데...." 어르신이 말끝을 흐리는 동안 엘베는 이미 1층으로 내려와 있었다.



아침마다 남편과 나는 이랬다.


"윗집 애기 일어났나 봐, 쿵쿵 아침부터 신나게 뛰네."

"거봐, 애들이 늦잠 그만 자고 일어나라잖아."


저녁에는 이렇게 바뀌곤 했다.


"안 되겠어, 여보, 내가 한번 올라가 봐야겠어."

"요즘 젊은 사람들 무서워, 함부로 그랬다가 어쩌려고. 지난번 엘베에서 젊은 여자 봤는데 말도 못 붙이겠던데. 어차피 윗집이 갑이야"


어느 날, 애들이 집밥 먹으러 왔을 때는 이랬다.


" 엄마, 이건 기본이 안된 거야. 어쩌다 오는 내가 이 정도면 엄마아빠는 어떻게 살아?"

"아서라, 넌 더했어. 엄만 너희들 키우면서 아랫집에 미안해서 죄인처럼 살았어."

"우리 어렸을 때는 일찍 자고 밖에서 많이 놀았잖아. 우린 이 정도는 아니었어. 정말, 이건 아냐."

"어쩌겠냐, 건강한 사내아이가 사는구나 해야지, 얼른 커라 해야지."

"형아가 가서 눈 크게 뜨고 조용조용하라고 하면......"

"(애들이 뭘 모르네 싶고 층간소음으로 인한 흉악한 뉴스가 떠올라) 말을 하더라도 일단 윗집에 누가 사는지는 부모랑 애 얼굴 보고 견적 내보고."


'나, 참. 집이 무너져라 악을 쓰고 우네. 왜 저러는 거야. 일단 관리실에 층간소음에 대해 방송해 달라고 해봐야지. 도대체 어떤 녀석이 사는 거야. 한번 얼굴이라도 보고 싶네.' 겉으로는 성인군자처럼 말했지만 솔직히, 나 엄청 참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러려니 하다가도 도를 넘었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윗집에 누가 이사 왔는지를 알아보고 사람 봐가면서 말을 해도 해야 할 거라는 잠정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더 깊은 속마음은 이런 거였다. 애가 문제인지 어른이 문제인지, 애가 통제가 안 되는 것인지, 어른이 통제를 못하는 것인지. 둘 다 문제라면 우리가 이사 가야 하는 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건 abnormal이야. normal의 범위를 벗어난 거야.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릴 수 없는 거라면.... 추측, 예상, 짐작을 하게 되는 상황이 못마땅했다.




엘베문이 열려 나는 공동현관문을 지나 하늘이 뚫린 밖으로 어르신의 뒤를 따라 나왔다. "사실은......"에 이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결 선선해진 바깥공기를 흡입해서 말할 용기가 난 것일까.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수 있는 말인 걸까.


"(손을 머리에 대면서) 우리 손자가 좀 이상해서 그래요. 외국에 사는데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와 있었다오. 나도 죽을 뻔했다오...... 할머니는 날마다 울고....." "댁이 얼마나 참으셨는지 내 잘 알아요. 이제 제 집으로 갔어요."

"저도 아들만 키워봐서 알긴 하는데, 좀 심하다...... 그래서 몇 번 찾아가려고 했었어요."

"열 살도 더 먹었는데.... 말이 통해야지..."


할아버지는 손자의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시다가 아차 싶었는지 갈 데가 있다면서 손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한결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후텁지근한 이른 아침 배낭을 메고 어디로 가는 걸까. 차라리 윗집이 제 자식밖에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젊은 부부가 '건강한' 사내아이를 키우는 거라면 어땠을까. 짐작이 비껴갔더라면......


소음이 사라진 우리 집은 절간같이 조용해졌다.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해야 하지 않을까. 쉽사리 삶에서 아픔을 제거할 수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