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나는 아이들의 낙천성이 신의 선물로 느껴진다

by 맘달

베이지색 모래가 깔린 해변에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다. 두꺼비집인지 모래성인지 불룩 위로 튀어나온 모양새를 보아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그게 무엇이든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 바닷가에 나와있다는 것, 그것이 잠겨있던 나의 기억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깊은 기억의 바다에서 뭍으로.






10살짜리 사내아이가 있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바다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겠지. 새벽인력시장에 나가 노동을 마치고 술 취해 밤늦게 돌아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그렇지 3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열 살이 넘도록 바다를 보지 못하다니. 그럴 수도 있는 거라는 사실이 슬펐다. 물총놀이를 좋아하고 잘하지는 못해도 수영도 한다지만 정작 가본 적이 없다는, 드넓고 광활해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겸손하게도 만들고 평온해지는, 바다.


어느 날 학교복지사와 동행해 그 아이의 집을 가본 적이 있다. 여러 날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은 무심한 듯 보였다. 남자 담임선생님을 만나고는 그게 무관심이 아니라 무기력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도 제자리걸음인 상황을 어쩔 도리가 없었을 테지.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내려놓음과 동시에 체념을 불러들이지 않던가. 그 아이를 맡아 상담하는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는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고 할 수 있다면 기꺼이 최선이 아니고 차선이더라도 해야 하지 않나. 그 아이에게는 교육이나 상담보다 부자가정의 취약함을 지원하는 복지차원의 대처가 절실해 보였다. 과거에도 몇 차례 가정방문을 가본 적 있어서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아이의 주거상태는 그보다 열악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드러난 내부는 더러웠고 어두웠고 역겨운 냄새가 났다. 가정방문을 마친 우리는 당장 아이의 집 방역을 알아보고 등교를 도와줄 아이 돌봄 서비스를 신청하자는 의견합의를 보았다. 이런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치과 돌봄 부재는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었고 오랜 시간 익숙해 굳어져있어서 뭐를 해도 잠시 반짝하고 말았다. 나는 이 상황을 알코올 중독 가정의 문제로 읽어냈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누군가의 용기로 아동학대신고가 되었다.


분리조치 전 마지막으로 상담실에 온 아이가 했던 말이 나는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 저, 그럼 고아되는 거예요? 네가 무슨 고아? 아빠가 버젓이 살아계신데...... 아버지는 치료를 받으셔야 하고 너는 아직 어리니까 누군가 돌봐주려고 하는 거야, 당분간만. 넌 고아 아니야, 알았지.


그 아이가 간 곳을 알 수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되는데 그 학교를 떠날 때까지 내 밟혔다. 냄새나고 뻑하면 지각하고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고 쉬는 시간에는 나대는 그 아이를, 반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내게 전한 말이다. 담임선생님은 그래도 반 아이들은 그 아이를 해코지하거나 못되게 굴지 않고 봐주는 분위기라고 했다. 나는 담임선생님이 그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선생님이 감싸는 아이는 아이들도 봐주지 않던가. 애들은 어른들만큼 복잡하고 정치적이지 않으니까. 아이들의 세계는 밝아 난 아이들이 지닌 낙천성이 신이 주신 선물 같다고 느껴진다. 낙천성은 약하고 여린 존재에게 호막이 되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바다는 가 보았을까.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긴팔소매를 가위로 잘라 반팔을 만들어 입고 마치 새로운 패션인양 자랑을 하던 아이, 머리를 이틀에 한 번은 감아야 한다고 했더니 찬물로 감았다고 하면서 보란 듯이 자랑하던 아이. 어느 날 내가 모래상자에 있는 모래를 다 파보라고 했다. 그 바닥이 무슨 색이냐고 물으니 파란색이라고 했다. 이게 바다색이야, 바다는 이것 보다 더 파랗고 짙기도 해. 모래상자에 물을 조금 붓고 네가 영상으로 보고 듣고 상상한 바다를 꾸며보라고 안내했다. 아이는 물을 한꺼번에 붓지 않고 서서히 부어가며 모래가 젖어드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고, 좀처럼 만지지 못하던 모래를 만지려고 손을 슬그머니 올려놓는 게 아닌가. 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놀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그 아이가 만든 모래상자를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나는 안도했다, 결코 거친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을 아이구나! 하고.


해변에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을 그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거센 파도가 밀려와도 왔다가 가는 거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아주 평온하고 잔잔할 때도 있으니까 괜찮다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단지 흘러오고 흘러갈 뿐이라고, 너는 결코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거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