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 말고 생일상 차려서 좋다
추석 하면 징글징글한 귀경길전쟁이 떠오른다. 더 이상 그런 끔찍함이 반복되지 않는데도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갓난아기를 안고 보스턴 백을 든 젊은 부부가 터미널방향 지하철을 탔다면 언뜻 봐도 귀경길에 오른 것으로 보였을 터 누군가 우리의 지갑을 노렸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그 상황을 어떻게 모면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는데 그날의 당혹스러움은 남아있다. 셋째를 임신한 해에도 어린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장거리 귀경길에 올랐었다. 시부모님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니고 남편이 혼자라도 가야 한다고 등 떠민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야 한다고 배웠고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나는 친정에서 매년 제사와 문중의 대소사를 보면서 마땅한 도리라는 게 있고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입덧이 심하고 힘들다고 말하는 게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 어리고 어리석은 날들이여. 명절이면 고단한 귀경길 전쟁은 자가용을 장만했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로는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은 한정 없이 같은 시간대에 쏟아지니 당연한 일이다. 제일 불편한 건 화장실이었는데 여자화장실만 구불구불 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끝이 어딘지조차 가늠이 되질 않아 어디에 줄을 대야 할지도 난감했다.
실시간 교통정보를 통해 고속도로 사정을 예측할 수 있게 된 것만도 어딘가. 그것만 믿었다가 큰코다친 적도 있지만, 모든 상황이 한결 나아졌고 우리의 사정도 한층 좋아졌다. 추석당일을 피해 다닐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전쟁이 아니게 되었는데...... 삶은 돌연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 마저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3년째다. 명절이 되어도 이제 귀경할 곳이 없다. 어머님이 집에 계시지 않으니 추석 같은 추석도 사라져 버렸고.
이제 남편과 나는 추석이면 우리 집으로 찾아올 새끼들을 기다린다. 지내야 할 제사도 없고 지켜야 할 도리도 없고 놀고먹는 휴일이다. 남편은 이런 때 뭐니 뭐니 해도 기름냄새를 풍겨야 명절스럽다고 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라 새끼들이 찾아오기 전에 전을 부치기로 했다. 두툼한 명태포와 호박에 밑간을 해두고, 만두 잘 만드는 회사의 냉동 동그랑땡도 녹여 밀가루를 묻힌 다음 달걀물을 입힌다. 인덕션에 팬을 올리고 올리브유스프레이를 한번 두른 다음 달걀물이 깔끔하게 떨어지게끔 얌전하게 올린다. 내가 혼자 버벅거리자 남편이 팔을 걷어붙인다. 가만있어봐, 기름을 넉넉히 둘러야지, 불도 좀 세게 해서 지글지글해야 제맛이지. 전라도 요리의 달인 어머님 손맛을 아는 남편은 나보다 낫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내가 조수 할걸. 젊어서 내가 시집 부엌에서 있을 때는 무신경하던 사람이, 변했구나. 변한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온다. 흐뭇해서 그저 말없이 노릇노릇 익은 전을 밧트에 담는다. 밧트하나에 꽉 찰 정도의 양, 한번 먹으면 끝일, 딱 알맞은 양이다. 양조절은 성공. 이번 추석은 둘째 생일하고 한 날이라 새벽부터 소고기미역국은 푹 끓여놨으니 샐러드만 올리면 구색은 갖춰질 것 같다. 스마트팜 양상추와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에 소금 간을 하고 그 위에 올리브오일을 끼얹고 레몬즙으로 마무리하면 샐러드도 완성. 그리고 빠지면 안 될 송편까지 쪄내니 한상 가득 푸짐하다.
나는 제사상이 아니라 생일상 차려서 좋다.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상차림이 제사상이니 이미 차린 거나 다를 바가 없다. 다 조상님 덕분입니다,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으니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손들이 먹고 싶은 것 장만해서 기분 좋게 나눠먹으면 조상님들 보시기에 흡족해하시겠지. 죽은 자를 위한 상차림이 아니라 산자를 위한 상차림으로 지금 이 순간 즐겁고 만족스러우면 다 된 것이다. 끝이다. 게임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