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커족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카페에서

by 맘달

지난 휴일,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었다. 연신 흩날리는 생머리를 쓸어 올리며 모임장소를 향해 걷고 있었는데 앗, 그만, 시간을 잘못 알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미 늦었다. 기온이 뚝 떨어진 날, 한 시간 먼저 도착하다니. 보통 같으면 한 시간쯤 때우는 건 식은 죽 먹기지만 이놈의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머리가 띵했다. 어딘가 카페가 있겠지, 했는데 골목 안쪽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온기가 느껴져 내 몸은 절로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밖에서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면유리로 된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재즈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탁자가 나란히 놓여있었는데 양쪽으로 각각 젊은 여자들이 노트북을 앞에 두고 앉아있었다. 나는 뜨아를 주문해 놓고 여자 둘 사이 남아있는 탁자 2개 중 하나에 앉았다. 이른 시간이라 커피는 금방 나왔고 내가 한 두 모금 마실 때쯤 카페 안으로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람 때문인지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는데 무엇을 찾는지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는다. 순간 그 옆 가장자리 쪽 젊은 여자가 할머니를 훑는 시선하고 마주쳤는데 야릇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뭐라 할 게 못된다. 커피를 시키지도 않고 왜 저러고 있는 거지,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추측이 난무할 때쯤 키 큰 중년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고 할머니 탁자에 다가가 앉았다. 그 자리가 대각선방향이라 보려고만 마음먹으면 자세히 볼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 남자가 커피를 주문해서 받아올 때라든가 전화받으러 밖으로 나갈 때만 슬쩍슬쩍 훔쳐보곤 했다. 집에 있다가 나온 편한 복장을 한 5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할머니는 그 남자가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해 내게 말을 걸었다. 내 아들인데 가끔 불러내 커피를 사준다오, 아들은 ** 난 ***이 사는데 며느리가 반찬도 해 준다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남자는 문제의 그 머리카락이 눈에 거슬렸나 보다. 엄마, 머리가...... 엄마, 모자 쓰고 다녀. 바람 불고 춥잖아. 내가 하나 사줄까. 그러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걱정마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사 오지 마. 엄마 다 있습니다, 이런다. 난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내가 알아서 할게' 란 말은 우리 애들이 뻑하면 나한테 한 말인데, 저 집은 엄마가 아들한테 하네. 아들이 또 전화받으러 나간 사이 할머니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아들의 잔소리가 심하다고. 그 말에 난 그저 웃음만 났다. 전적으로 탁자의 좁은 간격 탓이다. 더군다나 난 혼자인 데다 이어폰까지 두고 온 상태여서 귀가 활짝 열려있었으니, 들려서 들은 것일 뿐. 나보다 먼저 자리를 뜬 할머니는 나한테 씽긋 눈인사를 하고 아들 뒤를 따라나섰다. 잔소리에서 해방된 기쁨을 안고.


다 늙은 엄마와 중년의 아들이 휴일 이른 아침 카페에서 별말 없이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 영락없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나도 내 아들들과 저렇게 하면 좋겠다 싶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불쑥 "얘, 나는 혼자서도 카페 잘 간다, 가끔 가서 커피 마시고 와." 엄마의 말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구순의 할머니, 우리 엄마 혼커족이었네. 나도 졸지에 혼자 커피 마시게 되었지만 사실 할 일 없는 요즘 난 혼커족이 어가는 중이다. 월이 지날수록 엄마를 닮아가는데 이런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