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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Apr 28. 2024

북촌 <어둠 속의 대화> 전시회 소감

어둠 속에서 발견하는 나의 특별한 체세포들

세상에서 제일 친한 선배님이 이 전시회에 함께 가자고 권유해 주셨습니다. 저자로서 지금 집필작업도 하고 계시는 데, 놀러 가자고 연락을 주셨을 때 뛸 듯이 기뻤어요.

예전에 몇 번 참여했던 숲 체험에서 시각을 거의 배제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전시관에 도착하고, 모든 빛이 차단된 어둠 속에서 한줄기의 빛이라도 찾기 위한 동공의 쉼 없는 흔들림에서  현기증이 생겼고, 결국 눈을 감았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체험프로그램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암흑에 많이 당황하였습니다.


막대기와 앞뒤사람의 인적에만 의지한 전시관람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안내자의 모든 멘트가 이 어색한 어둠을 애써 변명하는 핑계로 들렸다가, 전시 중간부터는 안내자가 청각으로 들려주는 다양한 풍경이 눈앞의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그림은 머릿속에 펼쳐지는 느낌이라면, 청각과 촉각을 통해 상상하는 그림은 내 가슴 중앙의 어딘가에 스며드는 느낌입니다.


저는 전시 중간에 아주 잠깐 길을 잃어서 순간 헤맸는데, 내 귀가 찾아내는 방향과 거리감은 시각만큼 강렬하고 정확하여, 저 멀리 들리는 안내자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바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떤 코스에서 옆 사람의 손에 잠깐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6명 일행은 이미 자타를 구별하기 어렵게 서로 섞여 있었습니다. 손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는데, 앳된 목소리의 젊은 여성분께서 "제 손을 잡으세요"라고 말씀해 주시며, 자신의 팔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분도 앞에 누군가의 팔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제게 다른 팔을 기꺼이 내어주시는데, 태어나서 처음 잡아온 낯선 타인의 따뜻한 손에 저는 마음이 뭉클하였습니다.

내 뒤에서 걸어오던 사람도 나처럼 헤매고 있을 텐데, 나 혼자 허우적거리느라 내 뒷사람이 괜찮은지 물어보거나, 손을 내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결국 내가 얼마나 차가운 사람인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그 젊은 여성분이 내민 손에서 깨달은 겁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그 여성분의 옷소매를 잡고 걸어가는데, 계속 저절로 "너무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해서 몇 번이나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분의 손이 너무 따뜻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따뜻한 체온을 갖고 있구나. 나와 연이 있어도, 나와 연이 없어도 그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은 이렇게 따뜻한 체온을 갖고 있구나.'


전시회 내내 제가 저의 눈에 퍼붓는 핸드폰 화면이 생각났고,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청각과 촉각, 육감 등의 본능적인 감각들이 "나는 힘을 갖고 있어요. 나는 약하지 않아요."라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 관람을 마치고, 아트선재센터 전시회도 들르고,  떡볶이와 전통차도 즐겼습니다.


저는 지금 남편과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에 몸을 싣고 있습니다. 제 눈에 쏟아지는 햇살과 바다가 강렬합니다.

<어둠 속의 대화> 전시체험을 하기 전에는 제 시각이 모든 여행을 주도했다면, 이제 저는 소리와 촉감이 기지개를 켜는 여행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어떤 풍경에도 소리와 체온이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  중간중간 눈을 감은 채 제 피부와 귀의 세포들에게 여백을 내어주고, 일어나 보라고 똑똑 노크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동해바다 바람을 만지고 있습니다.


- 맘디터의 <어둠 속의 대화> 전시관람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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